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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누가복음5:1-11

제목: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누가복음5:3-7).

 

베드로와 그 동료들이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잡은 고기가 없어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시자, 그 말을 들은 베드로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

 

그것을 본 베드로가 예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엎드리는 것이다. 그것을 보신 예수께서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말씀하신다. 그러자 베드로와 함께 고기를 잡던 동료들이 배와 그물을 모두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더라도 낚시를 잠깐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말씀이 얼마나 황당무게한 말씀인지 잘 알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밤이 되면 잠을 자거나 쉬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로 밤에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있다. 그러다 새벽녘이 되면 먹이 활동을 하기 위해서 물이 얇은 곳으로 나온다.

 

당시 베드로는 고기 잡는 일 만큼은 일가견이 있어서 누구보다도 물고기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밤에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새벽녘에는 잡은 물고기를 갖다 팔기 위해 시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따라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와 그물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가 나타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상식과 지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말씀이다. 아니!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는 것이다. 이때 베드로는 잠시 이런 생각은 했을 것이다. ‘만약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면 당신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런데 베드로의 생각과는 달리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 그것을 본 베드로가 즉시 예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있다. 베드로는 요즘 말로 하면 상남자다.

 

베드로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솔직한 마음을 좋게 여기시고 네가 이후에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말씀하신다. 그 후 베드로와 함께 고기를 잡던 동료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아 제자가 되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의 기적만 눈여겨볼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솔직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옳을지라도, 나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꺾고 그를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이방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오늘날에도 베드로와 같이 솔직한 자들을 찾고 계신다. 가령, 기독교인들이 어떤 것을 옳게 여기고 있다 할지라도,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지혜로운 자가 나타나 더 좋고 더 나은 길을 알려준다면, 베드로처럼 즉시 자신의 생각을 꺾고 그를 따를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지혜로운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무려 2천 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기독교인들의 속 사람은 변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에는 죄악으로 인해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속에서 썩은 그것이 곪아 터져 이제 밖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온갖 비난과 조롱을 퍼붓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이렇게 썩어가고 있는데도 전혀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영적인 문둥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속 사람이 변화될 것으로 믿겠지만,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의 속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육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다. 만약 성령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때문에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은 반드시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는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기독교인들의 속 사람이 변화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을 쫓아내고, 예수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한다.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부활하신 후로는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예로, 부활하신 예수가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자 바울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예수가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들어가서 자라는 것을 두고 성화(聖化)되어 간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성화)으로 변화되어 가는 줄 알지만, 성령으로는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새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는다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그리스도처럼 속에서 자라거나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화(聖化)되어 간다는 말은, 옛 사람이 죄로 죽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작은 겨자씨로 오셔서 점점 자라게 되는 것을 두고 성화(聖化)되어 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죄(죽은 영)가 왕 노릇하고 있기 때문에,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성령을 받으면 성화 되어 간다고 하는 말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앞에 예수의 기름 부음을 받고 오신 자를 두고도 그리스도라 부른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한 분이지만, 부활하신 예수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을 쫓아내고 각 사람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그때는 예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지게 된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두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른다. 성령을 받고도 여전히 죄 아래 사는 자들은 종의 신분이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른다.

 

불신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인들마저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종교 생활로는 사람이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사람이 바뀔 줄 알지만, 성령을 받아도 바뀌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마음이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서 속 사람이 바뀔 것 같았으면, 기독교인들은 지금쯤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을 보니까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아도 죽은 영은 결코 떠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외치는 것은, 도리어 악한 영에게 자기 영혼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악한 영들은 지금도 기독교인들에게 계속해서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속이고 자기 하수인을 삼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악한 영에게 속아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다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기독교인들 속 사람이 변하려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속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해, 그동안 인간의 영()을 지배하던 마귀를 쫓아내고 성령으로 오셔서 다시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오신다.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 그리스도는 그동안 인간의 마음속에서 주인(왕)노릇 하던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인간의 마음을 그리스도가 지배하게 되면, 그때부터 인간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속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를 두고 성화(聖化)되어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부부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부부생활도 문제 없이 잘하고 있고, 그리고 부부가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있어서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서로에게 늘 불만이 많다. 그 이유는 아내는 여자의 특성상 남편이 자기만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만, 남편이 그렇게 해주지 않는 것이 늘 불만이다. 그리고 남편 또한 아내가 엄마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주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아내가 늘 불만이다. 그러니까 서로가 자신에게 잘해주기 만을 바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부부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자신에게 먼저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인간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악한 영의 특성을 따라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귀는 하늘에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다 쫓겨난 영적 존재이다. 따라서 늘 대우 받고 싶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귀신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오직 자신만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더러운 영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보니, 악한 영의 특성을 따라 인간들이 자신만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귀와 귀신은 항상 절 받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을 남들 앞에서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성령을 받아도 이런 더러운 영들은 떠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남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대형교회 유명한 목사가 집회를 할 때마다 약 오천 명씩 모이는데, 그날 따라 약 사백 정도밖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목사가 힘이 빠져서 집회를 못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기 가수가 사람들이 적게 모인 것을 보고는 힘 빠져서 못하겠다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한 목사라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들어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목사가 이 정도라면 일반 성도들이야 얼마나 더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는 단, 한 명의 영혼도 소흘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종과 아들의 차이점이다.

 

성령 아래 사는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가 자기만 사랑해 달라고 말할 정도면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이혼이 급증하는 이유도 모두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이 인간들 마음을 이간질을 시키기 때문에 나누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역시 아직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직도 죄에게 종 노릇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오직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영을 쫓아내 주셔야만 인간들이 나눠지고 헤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그때는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죽여서 희생(사랑)하게 될 것이다. 죄 없는 예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시키시고 우리를 마귀와 귀신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셨던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그때는 아무리 쌀쌀맞은 아내라도 엄마 같이 넉넉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목석같이 무뚝뚝한 남편이라도, 그때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주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악이 사라지게 되니까 부부간의 갈등이 사라지게 되고,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평안이다.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바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이에 반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떤가? 자신을 들어내서 사람들 앞에 자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뿐더러,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도 희생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절대 자신을 들어내거나, 남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동안 자신을 자랑하도록 부추기던 죽은 영이 마음속에서 떠나고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신의 죄인 됨과 그리스도의 은혜만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이렇게 자신을 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를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즉시 자신의 생각을 꺾고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즉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그때는 부부간의 모든 갈등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음으로 누리는 화평이요 평안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되면 그때는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19:26)고 하신 말씀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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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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