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율법의 역할과 성령의 역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율법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율법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재마저도 무의미하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그만큼 크고 중요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맺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율법이기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그토록 율법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율법의 우월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하나님 아들을 배척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이런 현상은,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받아서 영적인 백성이 된 현제의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로는, 오늘날 성령을 받아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현재의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율법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떠나서 한시도 살 수 없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 수가 없다. 따라서 율법하면 유대인들이요 성령하면 기독교인들이다. 율법과 유대인들이 불과분의 관계를 가졌던 것만큼 성령 또한 기독교인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떠나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었듯이,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고로 성령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맺어주는 아주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을 가까이 하고 살던 자들이 성령의 법을 어겨서 모두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아마 기독교인 가운데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겨서 자신들이 죽게 된 사실은 모르고 그저 율법만 들먹이고 있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고 있던 것이나 똑같은 이치다. 율법이나 성령의 법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법은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완벽하게 지켜낼자가 없다는 사실을 인간들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점도 없으시고, 흠도 없으시기 때문에 그리고 영이시기 때문에 그 입으로 하신 말씀을 절대 변개하실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떤 실수나 잘못도 범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에 비해서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고 또한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영으로 계신 분께서 하신 말씀을 육체를 입은 인간들이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이런 지키지도 못할 법을 주신 것은 실상은 모든 인간들을 죄 아래 가두어 놓고 나중에 아들로 말미암아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께서 주신 법 중에서 겨우 몇 가지 법만을 지킨 것을 가지고 마치 모두 다 지킨 것처럼 하여 자신의 의(義)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듯이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의(義)를 내세우며 예수님을 조롱하고 다녔는가? 자신들이 율법을 어겨 죽게 된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 체,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율법에서 자유를 얻게 해주시려고 오신 하나님 아들을 자신들 손으로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이제 성령아래 살고 있는 현재의 기독교인들 또한 이런 일을 답습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성령만 받으면 그것으로 만사오케이다. 성령 받았기 때문에 죽어도 천국갈 수 있다는 확신아래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줄 알고 오만 불손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이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해서 죽음으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은 손톱만큼도 깨닫지 못한 체, 자신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그것으로 자신들은 곧 죽어도 천국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꼭 유대인들이 행동하던 것과 조금도 다를 봐 없다고 하겠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었듯이, 오늘날 성령 또한 영적인 백성들을 하나님 아들 앞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쓰임 받는 종들이라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구원관만 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욱더 가관인 것은 마치 자신들이 구원이라도 시켜줄 것처럼 이야기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악하나도 볼 줄 몰라서 자신이 현재 죽음으로 가고 있는지 생명으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남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인지 주님 입장에서 보면 코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율법과 성령의 법은 이렇게 하나님 아들이 나타나시기 전까지는 정말로 믿는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법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으므로, 법을 어긴 인간들은 그 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실 하나님 아들을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예비하신 구원계획이다. 그렇게 하여 유대인들에게나 기독교인들에게 모두 똑같이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시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자신을 깨닫는 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고,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도 하나님 아들이 필요하듯이, 성령 아래 살던 기독교인들에게도 하나님 아들이 똑같이 필요한 것이다. 율법아래 사는 백성이 되었던지, 성령의 법아래 사는 백성이 되었던지 법아래 사는 백성들에게서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올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거짓과 권모술수, 그리고 욕심과 탐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아래 살고 있는 자들 속에 하나님 아들이 오시게 되면 그런 모든 죄악을 벗어버리고 아들로 말미암아 살아가기 때문에 비로소 온전함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이기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온전한 사랑을 나타낼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 앞에는 여름 실과(포도)로 오셔서 잠시잠깐 이 땅에 머무르시다가 가셨지만, 이제 영적인 백성들인 현재의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을 알곡(씨)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에 아들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 영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바로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 고은 예복을 갖추어 입고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이제 성령의 법(여러 가지 은사. 예언, 방언)이 패하여지고 나면 이제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종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전혀 새로운 말씀으로 성도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전혀 흠이 없다. 그 이유는, 그들 속에는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가 그들의 주인이 되어 그들을 직접 지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일곱 사자, 일곱 영이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적인 백성인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들 일곱 교회 사자들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영생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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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1:16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