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거듭난자들의 이야기

빛으로 오는 자

요한복음 3장 19-21

빛으로 오는 자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22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설명하시는 말씀이다.

 

그중에서 19-21절은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심판의 이유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이름을 믿고 구원이라고 하지만 그 행실은 전부 세상과 짝하여 타협하고 합리화해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행동들이 각각 미디어나 메스컴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사실상 내 삶과 신앙생활의 중간에서 트러블이 없어야 하기에 적절한 삶과의 타협을 통해 자신의 삶에 최대한 방해가 받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을 부수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빛이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한다면왜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며빛을 쫒지 아니하고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일부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말인 것 같으나, 기독교인 전체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면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순간부터 살아남기 위해 물질을 쟁취하고경쟁을 통해 빼앗았으며지배와 피 지배를 당하며 문화를 만들어 왔다그러다 싸움에 지쳐 국가를 만들고법을 만들어 각자의 이익과 약자를 보호하고 선을 행하는 방향으로 나름대로는 최대한 진리를 향해보려고 했지만그 과정속에는 반드시 서로의 이익에 피해가 안주는 방향에서 발전 하였기 때문에이익을 보존하려는 목적이 최우선이 되어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며땅 위에 충만하라 하셨고 싸움과 더불어 누군가를 죽이라는 일까지 하나님께서 시키셨다그렇기 때문에 삶에 충실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 그것이 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맞다하나님께서는 땅에 충만 하라고 하셨다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선택한 혈통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용된 은혜였다그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 아래서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죄가 안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반드시 죄가 되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고 레위기에 기록된 것처럼 저주를 받아 병에 걸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시간이 흘러 형식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나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려고 했던 노력들로 인해서 의로워져 있었고예수님이 오셨을 때 자신들을 지적하는 말씀을 거부하고예수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옳은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노력한 삶을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자신이 처해져 있는 문제를 아는 자들율법을 어긴 저주받은 자 그리고 진리를 원하는 자들만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방 기독교인들은 이와는 다르다예수님 이름을 믿고 성령 받은 것이 구원이라 치부하여자신들은 걸림돌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성령의 말씀대로 따라 살지 못해 마음속이 부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보호를 받아, 마음이 부패 되지 않았으나, 우리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었기에 보호되는 어떠한 것도 없이 오직 자신(자아)이 주인이 되어 살아왔기때문에, 부패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부패라는 것은, 얼마나 옳은것을 쫒으려고 하는 마음판을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모르고 오직 자신의 유익과 생존을 위해 문화를 만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왔어도 그 마음판의 주인이 본인(자아)이기때문에 따라 살 수 없고, 그로 인해 성령의 법을 거역하고, 서서히 옳은 것을 쫒으려는 마음이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방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더라도, 마음판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고 목적의 우선순위가 자신들의 삶이기 때문에, 신앙생활 했던 노력들로 의로워져 있어 자신들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 자는 자신들이 성령의 말씀을 어기고 저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반발을 할 것이다신앙생활에 열심 냈던 사람이라면 더욱이 말이다십에 일조를 드리고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고벌었으면 그만큼 남에게 배풀었고봉사를 했으며예배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행동이 누굴 위하여 한 노력의 행동인지 생각해보자모두 자신의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또는 사회적 위치에서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 했던 것이다기독교인 전부를 일반화시켜 매도한다고 생각하겠지만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본심(자아)을 못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심(자아)을 비춰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만이 빛을 비추어 주고 우리가 시인해야지만 자신의 본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법을 거역한 우리의 부패한 마음에 자아 대신 새로운 주인으로써 오시게 된다그리하면나의 의도와는 달리 항상 밑바탕에 숨겨져 있는 본심(자아)을 지적해 죄인을 만들고, 나는 완전하게 이익만을 추구하는 악한자임을 시인하고나의 모든 주권을 주님께 반납하게 되어자신을 주장할 수 없이 오직 주님의 목적을 이루는 ”의 도구로써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필자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에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항상 죄를 고백하고회개하고 스스로를 경계했으나사실 본심(자아)에는 죄를 고백하면서스스로 열심내는 이미지를 구축하고그로인해서 내게 오는 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죄를 고백했으니 이제 난 깨끗해 졌어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돼!” 라고 하며성령이 법에서 자유를 얻어내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걸 내 마음속에다 비춰주셨을 때는, 나는 너무나도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서왜 나를 매도하시는 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이루려는 결과를 전부 못 이루게 하셨고결국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주님이 내게 주신 결과는 항상 선이셨고주님 품에 돌아오기 위해 내 앞길을 막으셨던 것이었다항상 옳은 걸 주신 걸 알았기에 잘못된건 내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나의 본심을 마주한 결과내 속에 위와 같이 더러운 본심과 내 이익을 추구한 목적이 숨어있었다.

 

결국 나라는 인간에게서는 도저히 깨끗함과 선함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오직 주님! 당신만이 알려주시는 것 만이 정확하며사실이고나의 본 모습입니다나는 무서운 놈입니다나같은 인간은 의도치 않아도본심에서는 악이 나오니 도저히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습니다. ”

 

당신의 이름을 간절하게 불렀다 한들 나의 이익추구를 위해서 부른게 되버리니이런 인간이 어떻게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내가 섬겼던 건당신이 아니라 내 자아이며내 노력의 숭고함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라며 고백했다.

 

그리고는 내가 가진 권리를 모두 주님께 반납하자, 나에게도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내가 어떤 인간이고 얼마나 죄인인지 알게 하셨고나를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밑바닥부터 기어서 사람들의 곤고함을 알게 하시고입으로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행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 주셨다.

 

결국 나는 내가(자아죽기 전에는 절대로 빛을 사랑할 수 없고 어둠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닳았다.

 

수 많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빛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모두 나의 유익을 위하여그리고 신앙생활에서의 노력을 숭고하게 여겨내가 했던 일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본 모습을 비춰주어 시인하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도 절대로 빛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는항상 모순되어있는 자신의 모습과 삶에 딜레마에서 곤고해 하고 힘들어 할 것이다그런 사람이 있다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앞에 나오게 되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어두움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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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요셉

등록일
2023-11-05 21:12
조회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