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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의 이야기

20대의 불법 다단계 체험기…남은 건 빚과 싸늘한 시선

지난 2010년 10월 풍족하지 못했던 집안환경 때문에 휴학을 했던 대학생 김준모(23.가명) 씨. 김 씨는 경기도 평택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김 씨가 평생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매일 새벽같이 나가서 식당일을 하고 밤늦게 들어 오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볼때마다 장남인 김 씨는 한숨이 깊어졌다.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생 대학교 등록금도 걱정이었다.

◈ 친구의 소개로 '발'을 들여놓은 다단계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오민수(23.가명)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 씨는 서울 강남에서 일한다고 했다. 월급도 200만 원 가까이 되는 좋은 환경에서 일한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그후로도 몇 번이나 안부 전화가 왔다. 

4번째 통화에서 오 씨는 김 씨에게 "너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냐"는 핀잔을 줬다. 안그래도 절박했던 때 김 씨가 먼저 물었다. "나도 네가 있는 곳에서 같이 일할 수 있을까" 

오 씨가 말한 회사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대기업은 아니지만 괜찮은 곳처럼 보였다. 마침 그 회사 홈페이지 공채 글이 올라와있었다. 김 씨는 고등학교 때 친했던 고향친구 오 씨가 다닌다고 하니 의심없이 이력서를 보냈다. 

◈ 남의 희생을 통해 내가 성공하는 '다단계의 늪'

그렇게 간 곳은 알고보니 다단계회사였다. 상급자들은 1년만 고생하면 지부장이 되고 쉽게 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꼭 그자리에 오르겠다고 다짐하며 단숨에 800만 원을 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초등학교 동창을 사업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동창의 매출이 모자라 김 씨는 상위 직급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 동창은 도망을 갔다. 김 씨는 다시 누군가를 끌어들여야만했고 이번엔 대학 과 동기에게 연락을 했다. 

9개월 동안 이런 생활이 반복됐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계속되는 실패에 포기하려고 했지만 상급자들은 김 씨를 앉혀놓고 설득을 반복했다. "부모 생각은 안 하느냐"는 상급자의 질책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김 씨는 자신의 신용으로 가능한 대출을 모조리 받았다. 결국 이 마저도 바닥을 드러내자 하루 10시간씩 막노동판에 나서기도 했다. 상위 직급자가 되리라는 환상에 등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드디어 소개한 친구가 투자를 했고 조직을 만들어 상위 직급이 됐다. 그동안의 서러움과 고통을 한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다단계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인식도 있었지만 공제조합에 가입돼 있고 합법적인 회사라는 말이 김 씨를 떳떳하게 만들었다.

◈ 뜻밖의 경찰 조사로 알게된 사실들

그러던 중 김 씨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지병이 심해져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시 다단계에서 나와 밖에서 아버지 간호를 하는 중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경찰은 불법 다단계 피해자로부터 신고를 받고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조사를 받으며 그토록 꿈에 그리던 지부장의 월 평균 수입이 1,000만 원은 커녕 100만 원도 안 될 때가 많다는 걸 목격했다. 그곳에서 30만 원 하던 시계는 알고보니 많이 줘봐야 5만 원도 안 되는 물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복분자, 블루베리, 콜라겐도 25만 원에 샀지만 원가는 3만 원이었다.

 

조사를 받고 난 뒤 김 씨는 어머니의 눈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주름살이 더 깊어진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낸 친구들과 이웃들에게도 김 씨의 불법 다단계 사실이 알려졌다. 김 씨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아도 김 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애써 그들의 눈길을 피해 다녔다. 

다단계의 폐해는 그곳을 뛰쳐나와도 김 씨를 옭죄고 있었다. 김 씨는 지금도 편의점과 PC방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지만 연이자 39%나 되는 대출금은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다. 부모님이 400만 원을 갚아줬지만 여전히 수백만 원의 빚이 김 씨를 짓누르고 있다.

김 씨가 다단계에 끌어들였던 사람들과는 모두 연락이 끊겼다.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보내고 카카오톡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 김 씨는 평생 죄를 지은 느낌에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부푼 꿈에 다단계사업에 뛰어들어 2년을 보냈지만 지금 김 씨에게 남은 것은 빚과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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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8-27 16:39
조회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