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영적인 법과 영적인 아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루살렘 양문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정자) 다섯이 있고, 그 안에는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어서 물의 동함(動涵=물이 살아서 움직이는 현상)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動)하게 하는데, 그때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려던지 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 한 병자가 오랜 병을 앓고 누워있는 것을 예수께서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주여(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내려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하고 하소연 하자, 예수께서는 그자리에서 즉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바로 자신들 눈앞에서 목격한 유대인들은 "안식일날 저런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 도대체 누구인가?"하고, 예수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며 율법을 들먹여가며 도리어 병 나은 사람을 질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도대체 인간이 얼마나 강퍅한 마음을 소유한 자들일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법도 좋고, 조상들의 전통도 중요하다지만, 도무지 인간들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예수에 대하여는 눈꼽만큼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오직 안식일이란 율법을 어긴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 인간이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신앙이라는 법 아래 억매여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를 똑똑히 보게 된다.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율법 아래서 살면서 그 법을 못지켰을 때에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저주로 인하여 꼼짝 딸싹도 못하고 심판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보면 혹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 주시게 되면, 저주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오늘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자들이 모두 율법 아래 살던 자들로서, 그들은 엄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몸에 병이들게 되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을 낫고자 하여 모두들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천사가 언제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할지도 모르는 상황속에서 기약도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한다 하더라도 가장 먼저 물속에 들어가는 자만이 병이 낫게 되었으니, 병이 오래되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일 수록 연못에 먼저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적어진다.

병이 오래되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물속에 가장 먼저 들어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속에서 그래도 낫고자 하는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연못가에 누워 있었으니, 예수님 눈에는 그것이 애처로워 보였던 것이다. 수십년 동안을 벼르고 별렸지만 한번도 물속에 먼저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보다 몸이 성한 사람들에게 번번히 뒤로 밀려서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가 오늘 드디어 그가 하나님 아들을 만나게 되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저주를 받아서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아들로말미암아 단번에 해결을 받게 된 것이다. 그를 믿게 되면 더 이상 천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 또한 천사의 도움이 필요없게 되니까 더 이상 연못의 물을 찾을 필요도 없고, 그리고 더 이상 오랜 세월을 못가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율법 아래 살던 자들이 아들을 만나서 영생을 얻게 되는 방법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마치, 자신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은 것 때문에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보다 더한 중환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율법으로 인한 저주를 받아서 육신이 병들어서 연못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라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버린 이유 때문에, 모두들 마음속이 성령의 저주를 받아서 마음이 강퍅할대로 강퍅해져 있는 중중환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멀쩡하다 해서 도무지 자신이 중환자임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유대인들은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병든 모습을 보고, 그것이라도 고침 받기 위해서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다가 예수님 눈에 띄어서 고침 받게 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겉은 멀쩡하고 속이 썩어 있다보니 좀처럼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다가 모두 멸망으로 갈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온전히 따라살지 못한 영적인 중환자임을 자각하고 영적인 베데스다 연못가에라도 누워있기라도 하면,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지나 가시다가 그를 보고 불쌍이라도 여겨 주실텐데, 모두들 성경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는 측은히 여기면서 정작, 자신이 그와 같이 병든 자라는 것으로 모르고 오만 불손해 있다보니, 주님으로부터 전혀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성령을 온전히 따라살지 못하여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영적인 환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영적인 환자가 치료받기 위해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 앞에 달려 나와야 한다. 자신이 육신으로 멀쩡하다 하여 영적인 환자의 신분을 망각하게 될 때, 육신적으로는 아무일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영원히 구제받지 못하게 된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육신을 입은 하나님 아들이 필요하시듯이, 영적인 법 아래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필요 한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영원히 멸망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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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0:49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