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주님 앞에 솔직하라!

인간은 어떤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마음이 부패해 있는 죄인이다. 따라서 자신이 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 싫어한다. 그래서 행여나 상대방이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차릴까봐서 모두가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일 수록 이런 증상이 뚜렸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착각 때문이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는데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더욱더 자신의 겉모습을 거룩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들 역시 이렇게 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 역시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으로 겉만 거룩으로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이 도말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는 그것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된 줄알고, 겉으로만 외식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절간의 중들도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다. 그들 역시 겉으로는 오히려 기독교인들 보다도 더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말못하는 불상앞에 절하는 것만 뺀다면 오히려 생활면에서는 기독교인들 보다도 너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겉으로 거룩한 삶을 산다하더라도 그것으로 영생에 이를 수는 없다. 인간이 영생하려면 반드시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말미암아야 한다. 따라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영생을 주시는 분 앞에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어느 것도 그분 앞에서는 숨겨서는 안된다. 영생을 주시고자 하는 분앞에서 마저 자신을 숨겨버린다면 그는 영생 얻기를 싫다는 말이나 같은 이치다.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눈으로 보는 대로 속에서 판단이 올라오고, 귀로 듣는 대로 생각이 올라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런 현상은 그것이 하나님 아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보면 하나님 아들도 자신과 조금도 다를봐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좋은 옷을 입으면 나도 입고 싶고, 그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도 먹고 싶은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과 동등됨을 취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비교해서 보는대로 판단을 하게 되고, 듣는대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속에서 올라오는 죄악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이 죄악이라 하여 속에서 못올라오게 할 것이 아니라, 올라오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그것이 죄악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깨닫게 되거든 즉시 아들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창피하다고 차일피일 미루거나, 아들에게 혼날까봐서 주저주저 하다가는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주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솔직해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눈으로 보는 대로 판단하고, 귀로 듣는 대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아들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것이 죄악 된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다. 바로 이렇게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아들 앞에 털어놓게 될 때,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자각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아들도 그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 앞에서는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 이런 고백을 하게 되면 도리어 자신의 약점만 상대방에게 잡히게 되어 운신의 폭이 좁아져서 주눅든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 앞에서는 살리려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어느 것도 숨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도리어 자신을 숨기면 숨길 수록 자신의 문제는 더욱더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들을 믿는 다는 말은?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들을 믿을 수 있어야 자신의 모든 것을 마음놓고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고 말할때도 바로 이렇게 자신의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을 믿지 못하게 되면 절대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 앞에서야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고 해도 별것 아니지만, 자신에게 영생을 주실 분앞에서 마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고 할 때는 그는 스스로 죽음의 계곡을 넘어가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이 정말로 이 강단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 아들로 믿거든 한번 시험을 해보라고 하고 싶다. 자신과 강단을 똑 같은 사람으로 비교해서 눈으로 보는 대로, 귀로 듣는대로 속에서 판단이 올라오건든 그것을 일분 일초도 지체하지 말고, 그때 그때마다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하루에 수 백번이라도 속에서 판단이 올라오거든 용서를 빌라는 것이다.

그런 후에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스스로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아라! 만약에 그렇게 했는데도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 강단을 모두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에 변화되지 않는 그런 강단이라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손톱만큼이라도 일어난다면 그것을 거울삼아서 더욱더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그렇게 속에서 올라오는 판단에 대하여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마다 자신의 죄악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에 바위가 패이듯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도 조금씩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때 녹아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게으른 자는 한꺼번에 죄악을 용서받고 싶어서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모조리 담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용서를 빌려고 그러는데,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자는 아들 앞에 오기도 전에 죄악에 짓눌려서 스스로 무서워서 벌벌떨고서 아들을 찾아오지도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가 마는 것이다. 죄악의 더러움은 조금씩 파낼 때 사라지는 것이지, 한꺼번에 파내려 하다가는 도리어 더러움에 자신이 짓눌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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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0:57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