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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말씀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닮은 점!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닮은 점!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사실 똑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아래 갇힌 죄인들이라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힌 죄인들이다. 당시 율법아래 갇힌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인격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셔야 하듯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갇힌 죄인들을 구원하려면 마찬가지로 인격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셔야 한다. 그런데 두 백성들 모두 말로는 자신을 구원할 구세주를 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의 욕구(욕심)을 체워줄 구세주를 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당시 유대인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너무도 똑같이 닮아있다.

 

우리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닮은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자화상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 역시 유대인들처럼, 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를, 내가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닮은 꼴을 통해서, 오늘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약2천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구원) 되지 못하듯이,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의롭게)에 이를 수 없다.

 

유대인들에게 육체의 죄를 깨닫게할 목적으로 율법을 주셨다면,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의 죄를 깨닫게할 목적으로 성령의 법을 주셨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을 가지고 의(義) 삼았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른 것을 가지고 의(義)로 삼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으로 의롭게 될 수 없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른 것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으로는 죄가 해결되지 않고, 반드시 인격적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서 육체의 죄를 사함 받아야 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른 것으로는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고,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인격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보고 신앙생활 했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을 보고 신앙생활 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율법)을 보고 신앙생활 하다보니, 정작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에 이르게할 신약성경(복음)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신약성경(영적인 율법)을 보고 신앙생할하다보니, 정작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에 이르게 할 목적으로, 예수께서 영으로 사람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영적인 복음)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에 이르게할 목적으로 기록한 말씀은, 지금 영적으로 오신 주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전해주시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정작 자신들을 구원에 이르게 할 예수께서 말씀하신 신약성경은 시하고 믿지 않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비롯하여 베드로, 요한, 바울 같은 자의 이름만 들먹이며, 정작 자신들을 구원에 이르게 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은 거들떠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이 유대인들에게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라면, 신약성경은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따라 살아야 하지만, 유대인들 어느 누구도 구약성경대로 따라살지 못하고 모두가 율법아래 갇히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신약성경말씀대로 따라살 수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힌 죄인들이다. 영적인 율법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시는 것이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여러종파로 나누어 있었듯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여러 교단과 종파 나뉘어져 있다. 유대인들이 자기 동족들이면서도 세리와 창기들을 죄인이라고 멀리 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기 동족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교단 교리와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이라 하여 멀리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라 생각하고, 이방인들을 개, 돼지로 취급하며  상종도 하지 않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면서, 불신자들은 마귀새끼라며 상종도 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목숨처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라면, 주일날의 주인은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오늘날 믿는 자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더 이상 주일성수는 필요없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도 주일을 지키고 있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발버둥쳐 보았지만,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아보려고 발버둥쳐 보지만,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법을 따라 살 수 없다. 따라서 두 백성 모두 율법아래 갇힌 죄인들이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격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앞에 제사 드렸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배당에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죽도록 제사를 드렸어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가 도말되지 않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죽도록 예배를 드려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또한 도말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요 또한 유일무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백성들이라 생각하여, 천국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들이 가장 먼저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또한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해주듯이,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인격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을 믿지 아니하면, 자신이 지은 자범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가려면 육체로 오신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가능하듯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하나님 백성들이라 영적으로 지은 죄(마음속으로 지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사람을 통해서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가능하다.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모두 '원죄'를 해결 받게 되지만, '자범죄'는 자신이 하나님 법을 어기고 직접 지은 죄이므로, 반드시 인격적으로 오신 주님 앞에 달려나가서 자신의 죄를 직접 고백해야 해결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법도 없이 개, 돼지 같이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모두가 마음이 부패하여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지은 '자범죄'이다.

 

이런 '자범죄'를 해결해주시 위해서 기독교인들 앞에도 인격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시는 것이다. 그때 기독교인들은 인격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 앞으로 달려 나가서 자신의 죄를 직접 고백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의 모든 죄가 도말되게 된다. 이는 마치,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인격적으로 오신 예수 앞으로 달려나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모든 죄를 사함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의 닮은 꼴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죽도록 신앙생활 잘해놓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보내준 아들을 믿지 못해서 버림받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지금까지 신앙생활 잘해놓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못해서 버림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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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1-03 20:57
조회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