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동영상말씀

동영상 말씀을 듣는 분들에게!

동영상 말씀을 듣는 분들에게!

 

오늘날 기성 교회에서는 성령만 받으면 곧 구원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하기 때문에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 내용을 읽어보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누구나 죄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에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으면 본인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가 사라지는 줄 알고 있지만,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는 성령을 받아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고, 인간의 영()속에 오시기 때문에 마음속의 죄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을 쫓아내야만 죄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으면, 사단의 백성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신분만 바뀌게 되었을 뿐 아직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에 따라 성령을 받으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죽은 영)또한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들이 성령(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세상과 짝하게 되면, 그때 죄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서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눈이라도 빼줄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타락으로 가는 이유는 모두가 죄(육신)에게 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오늘날 불신자들이 타락한 기독교를 보고 개독교라 부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병속에 담아놓은 흙탕물이 가라 앉아 있을 때에는 맑은 물처럼 보이지만, 병을 건드리게 되면 바닥에 가라 앉아 있던 흙탕물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병속의 물을 모두 흐려놓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병속의 물이 인간의 마음이라면 흙탕물은 죄입니다. 이때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흙탕물을 정화(淨化)시켜 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고, 인간의 영()속에 오셔서 기독교인들이 지키고 살아가야 할 법만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 그리스도는 병속에 들어 있는 흙탕물을 모두 정화시켜서 깨끗한 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를 두고 성화되어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모두들 전 재산이라도 다 받칠 것처럼 또는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 마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다시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벧후2:22)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할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빛()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죄까지 낱낱이 찾아내주십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도록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누구나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율법아래 살던 사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180도로 회심한 사건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하는 자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보고, 성령만 받으면 자신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는데,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성령만 받아서는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아래 살다가 다메섹 도상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후, ()과 혼()이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다가 전도를 받아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이제 겨우 기독교인의 영()이 마귀 발아래서 빠져나온 상태라서, 기독교인들도 혼()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바울처럼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도 반드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바울처럼 거듭날 수 있습니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그리스도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 아들은 율법을 거역한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죄인의 신분입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 백성은 아직은 하나님 자녀가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하나님 백성의 신분에서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어림없습니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에게도 율법과 복음을 주셨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영적인 율법과 영적인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육체에다 주셨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율법을 마음속에다 주셨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마음속에다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이를 두고 '영적인 율법'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영적인 복음이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두고 '영적인 복음'이라 말합니다.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가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지만,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영적인 율법의 완성자로 오십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누구나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습니다. 율법아래 갇혀 있다는 말은 아직도 죄에게 종노릇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고 율법아래 갇혀 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모두가 죄에게 종노릇 하고 있었습니다. 죄에게 종노릇 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예수께서 오셔서 자유케 하여 주셨듯이, 오늘날 '(죽은 영)'에게 종노릇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자유케 해주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케 되는 과정입니다.

 

이방인들이 처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으면 뜨겁게 느낍니다. 이는 바로 성령이 하나님 영이라는 증거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임재를 불로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기도원 같은 곳에서 "불 받아라! "하는 말은 성령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신앙생활 자체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지 않고서는 신앙생활 자체를 시작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좋은 예로 불신자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지 않아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과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이방 불신자들을 땅에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을 하십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은 오직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만 맡기신 일입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통하여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방인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첫 출발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 세상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고, 이방인들의 어떤 댓가나 노력이 없이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부터 세상(사단)의 법을 버리고 하나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법이란? 예수께서 신약성경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양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입니다.

 

이는 마치,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았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들 또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는 그 순간이 4천년 동안 마귀의 발아래서 종살이 하던 것에서,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 백성으로 신분이 바뀌게 되는 순간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았다고 하여 곧장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듯이, 이방인들 또한 성령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으로 온전한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 애굽을 탈출했다고 하여 그것으로 온전한 안식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넌 다음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온전한 안식에 들어가게 되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 받은 것으로는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다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비로소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고 있던 것과 같은 처지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넌 다음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아모리 칠 족속과 싸워서 이겨야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듯이,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겨자씨가 자기 마음 밭에 떨어진 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과 싸워 이겨야만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 역시 모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온 자들이 천국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두 넘어지고 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타락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마음속에 계셔야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고, 인간의 영()속에 오시기 때문에, 성령만 받아서는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법 아래서는 성화(聖化)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그리스도처럼 자라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성령이 점점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는 말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겨자씨로 오신 그리스도는 점점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마치, 결혼한 여자가 아기를 임신했을 때, 처음에는 배도 불러오지 않아 임신한 것 같지 않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배가 불러오고 10달이 되면 아기가 자라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처럼, 마음 밭에 떨어진 겨자씨도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 세상 모든 새들이 날아들어 큰 나무에 집을 짓게 됩니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 역시 처음에는 보잘 것 없이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씨뿌리는 비유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령과 달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십니다.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모든 죄악을 찾아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똑같은 일로 착각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절대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는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요. 베냐민 지파요. 바리새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율법으로 자신이 틀림없이 의롭게 된 줄 알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성령을 받았으니까 자신은 틀림없이 구원 받은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빛()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교리와 가말리엘 신학교에서 배운 모든 신학 지식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유대교의 교리보다 또는 가말리엘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지식보다 훨씬 더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성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성령으로 의롭게 된 줄 알았으나, 그리스도께서 전해준 말씀을 듣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보니 비로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기성 교회에서 목사, 장로, 전도사, 권사, 집사, 심지어 신학교수까지 역임했던 분들이, 이곳에서 주님이 전해준 말씀을 듣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사람이 만든 교리와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지식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깁니다. 이는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지식보다 또는 사람이 만든 기독교 교리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교회를 30년 이상 다니던 분이 이곳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옛 사람(자아)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보니, 그동안 자신이 성령의 법아래서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신앙생활을 했던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 된 줄로 착각하지만, 사실 성령의 법 아래서의 신앙생활로는 어둠속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둠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구원 받았다고 말하게 되면 누가 가장 좋아 하게 될까요? 마귀와 귀신이 가장 좋아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종의 신분으로서, 아직도 죄에게 종노릇하며 살고 있습니다. 종은 주인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종은 주인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람되게도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가능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모두가 백성의 신분 즉, ()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도 모두가 하나님 백성이었지만, 그들 모두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인()의 신분이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빛()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비밀들을 알려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선생이 되어 자신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은 자들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죽은 자들이 사용하던 예배당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오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필요 없게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성 교인들이 이곳에서 가장 크게 놀라는 사건은,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모든 신앙생활이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 모형이라는 사실에 모두들 크나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는 마치,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직접 경험해 보시면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그리스도 모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기성 교인들로서는 동영상 말씀이나, 이곳에서 전하는 말씀들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당장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으로 함부로 판단을 하게 되면 악한 영의 방해로 반드시 실족하고 맙니다. 따라서 말씀을 듣고 당장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궁금한 것은 언제든지 물어보십시요. 육으로는 영의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자세히 설명을 해주게 됩니다. 이것만 주의하시면 여러분들도 얼마든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8-27 11:54
조회수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