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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들의 이야기

야곱을 보면 이방인의 속성을 알 수 있다.

야곱을 보면 이방인의 속성을 알 수 있다.
본문: 창세기 32 : 1~12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은 야곱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야곱의 축복이라는 복음성가를 만들어서 즐겨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야곱의 본질을 알고 나면 감히 그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고, 이것은 인간적인 육신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우리가 야곱의 삶을 들여다보면 왜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우리 이방인의 모형으로 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 본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야곱은 형에서와 함께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것도 형에서의 발 발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났다. 즉 벌써 태중에서부터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 통하여 성경은 두 민족이 나누이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창 25:28).


이것은 이미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에서와 야곱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할 것을 미리 예표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누구도 알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알 수 있다.  이제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밝히 드러내신다. 에서와 야곱은 서로 다른 취향이 있었다. 에서는 활동적이라면 야곱은 내성적이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 허기가 져 있을 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리브가의 계략으로 야곱은 형에서의 장자권을 죽 한 그릇으로 팔아 버렸다.


위의 사건이 장자권을 판 사건으로만 생각하면 별 의미가 없다. 야곱의 비열함과 담대하지 못함과 야비한 행동을 엿볼 수 있다. 이 일을 잠시 접어 두고 유대인들과 이방인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한번 들여다보자. 유대인은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 속에 살았고,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한 혈통을 부르셨다는 선민의식이 있었다. 그런 의식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지상에서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혈통의 후손이 번창하게 되고, 애굽으로 이주시켰고, 다시금 출애굽 하게 하신 후에, 광야에서 율법을 지키도록 하였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그런데 이 율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한 족속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그 율법대로 살아 보라고 하셨는데 유대인들은 그 율법이 자신들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그 율법을 더욱 잘 지키기 위하여 613가지의 율법을 만들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일을 보면 유대인들은 왜 하나님이 한족속을 선택하셨는지, 그리고 왜 애굽 으로 이주하게 하여 살고, 그 후에 다시금 그들을 이끌어서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는지, 그 중요한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 누구도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에게로 나오라는 깊은 뜻이 있었는데도 이들은 그 율법에 심취하여 오직 율법으로만 구원을 얻는 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실 당시의 상황은,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하에서 살기가 힘든 시기에 선지자나 예언자들이 나와서 메시아를 보내 줄 것이라고 하는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 아래서 해방해줄 메시아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메시아를 대망하였지, 진정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시려는 메시아를 대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가 나타나서 더욱 율법을 잘 지켜야 하는데, 율법을 어기고 율법에서 금기시하는 자들과 친구가 되어 살고 있으니, 그들의 처지에서는 예수를 믿을 수 있는 한구석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면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 중에서 유대인들이 당신의 사회구조로 볼 때 예수를 믿으면 그 사회에서 외면을 당하고 제외를 당하여야 하는 상황인데 이들이 예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이렇게 율법을 주신 분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동으로 결국 자신들의 의를 세우게 되었고 그 의로 인하여 하나님과 대적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야곱을 선택한 것을 고찰해보자. 아브라함의 두 아들 가운데 첫째인 이스마엘은 버림을 당하고 이삭은 선택을 받았다. 그런데 이삭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인 에서는 택함을 받았지만, 야곱은 선택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경우를 보면 장자를 선택받지 못하고 둘째를 선택한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고, 둘째 이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으로 오해이다. 그 이면(裏面)을 보면 이스마엘과 에서는 세상적 이었지만, 야곱과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받은 자녀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곱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녀라고는 하지만, 그의 속을 살펴보면 우리 이방인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야곱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 리브가의 말에 따라서 형을 속여서 장자권을 쟁취하였다. 그리고 그 장자권을 빼앗은 것으로, 인하여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살면서 삼촌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속기도 하였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형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사기꾼의 본질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외삼촌의 재산을 빼앗는 일을 하게 되고 재산만 아니라 라반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에서가 동생을 향하여 400명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세운다. 먼저 재산과 동행자들을 나누어서 차례대로 내보내서 협상하지만, 그 협상은 실패하고, 결국 야곱이 직접 나서게 되는데 그때 천사와 환도 뼈가 부러지도록 씨름하였고 결국 응답을 받았고, 에서와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창 33 :10).


여기서 이방인과 야곱을 살펴보자. 이방인들은 율법의 관할(管轄)에서 벗어나서 죄악으로 살아왔던 자들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죄악이 태어나면서부터 자랐고 죄악이 만발하고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살길이 열리게 되었다. 마치, 야곱에게 형에서와 회개하는 길이 열린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의 피로 원죄를 해결해 주심으로 그 증표로 성령을 주셨는데,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황당한 말을 하고 있다. 성령은 양자의 영이 아니라서 인간의 영(靈)에 오신 것이기 때문에 성령은 받았어도 마음속에는 죄악이 그대로 있다. 마음속에 “양자의 영”, 즉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사절단을 보내서 화친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방인들은 성령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원죄(原罪)를 사함받은 증표이다. 야곱이 형에서 에게 물질과 아내를 보내고 거동을 보는 것같이,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태도와 다를 게 없다.


형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대면하여 만나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이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하여, 순서에 의하여,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생결단하여야 한다. 오늘날 많은 이방인들이 영적인 문제를 육신적으로 쉽게 지나가려고 한다. 영적인 얍복강의 씨름을 직접 체험해야 알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받은 자 외에는 알수 없다고 말한다(마 11:27).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방인은 마음으로 율법인 성령을 지켜보라고 하시는 것을 육신으로 사무적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즉 이방인들은 마음으로부터 출발이 되어야 한다. 마치 야곱이 형을 만나려고 얍복강에서 사생결단했다는 말은 이미 마음의 결단을 했다는 말이다. 오늘날 이방인들은 마음으로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으로 결단한다는 말은 이미 나 자신이 사생결단하는 것 즉,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다. 이방인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의 보호 하심을 전혀 받지 못하여 죄악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죄악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러므로 목숨을 내어놓지 않으면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실 수 없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 가운데만 오신다. 인간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는 주인이 바로 자신(본질, 자아, 죽은 영)이다. 그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 한,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수 없다.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원래의 주인으로 오시기 까지 그냥되어지는 것이 절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피흘리기 까지 싸워야 한다(히 12:4). 성경 말씀하신대로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성장해야 된다. 그렇게되면 겨자씨와 같은 작은 씨앗이 자라가서 커다란 나무가되어 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집을 짓게된다(엡 4:13, 마 13:32).


오늘날 야곱과 같은 이방인은 아무리 자기의 본질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앞으로 달려나와야 영이 살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길도 없음을 명심하라.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14: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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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벧엘

등록일
2023-12-01 07:03
조회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