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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들의 이야기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이 기록한 말씀!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이 기록한 말씀!


그동안 기성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목사, 장로, 전도사, 대학교수, 권사, 집사)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이곳에서 바울처럼 빛(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180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기성교회에서 듣거나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이곳에서 직접 체험하며 느끼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정말로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성령의 법아래서는 말로만 변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속 사람은 옛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맙니다. 이를 두고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벧후2:22)고 말합니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으로는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속사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빛)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인간의 속사람이 변화됩니다. 따라서 성령만 받아서는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천하없는 사람이라도 끝에 가서는 결국 믿음에서 넘어지고 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타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처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기성교회에서 수 십 년씩 신앙생활 하시던 분들이, 이곳에 와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자, 사도 바울처럼 180도 변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회심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면 아마 모두가 깜짝 놀랄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마음속에는 옛 사람의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겉만 약간 변화될 뿐 속사람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하시는 일이 각각 다릅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율법을 주시나, 그리스도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표적을 나타내서 불신자들을 전도해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을 하시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거역하여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합니다. 이렇게 성령과 그리스도께서는 하시는 일이 각각 다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만 받으면 구원 받은 줄 잘못 알고 있는데,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하나님 영이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습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할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갔다면, 기독교인들은 지금쯤 모두가 속사람이 변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서 속사람이 변화 된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 어느 누구도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라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의 보호아래 살았지만,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기에, 그들 역시 율법으로는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이 율법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성령으로는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있는데, 만약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변화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어도 속사람이 전혀 변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는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은 과연 속사람이 변화되어 있습니까? 옛 사람(미움, 시기, 질투, 분노, 욕심 등등...)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습니다.


그렇다면 왜 자꾸 성령과 그리스도 영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보게 되면,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으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믿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절대 해결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면 속사람은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죄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영생에 이를 수가 없게 됩니다.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과 달리 성령만 받아서는 절대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마음속에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영생에 이르게 됩니까?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가 천국에 간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고 지옥일 것입니다. 속 사람이 변화 되려면 성령만 받은 것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를 해결해 주셔야 속사람이 변화되어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의 구원입니다.  


좋은 예로 장로교단(통합측)에서 30년 이상 목회하시던 목사님 한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본 교회를 찾아와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는 깜짝 놀랍니다. 자신도 지금까지 목회를 하고 있었지만, 생전 처음 듣는 말씀이라며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충격을 받고 어찌할바를 모릅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자신이 기성교회에서 말씀을 잘못 가르쳤다며 깊은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통회자복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요?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마음속에 빛(영)으로 들어가서 죄악을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영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가니까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위 목사도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성령의 법아래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은 지금 섬기던 교회를 사직하고 이곳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혹독한 연단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금같이 사용되기 위해서 자신의 옛 자아를 버리는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연단 과정은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친 후에야 새 사람으로 변화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가 좁은문을 통과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불로 당신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성령도 하나님 영이라서 불로 임합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으면 뜨겁게 느껴집니다. 찬송가에도 성령을 불로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빛으로 임합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영)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난 후 180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처럼 이런 체험을 하신 분이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이방인들 앞에는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뜨거운 체험을 하신 분은 많이 있어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분은 아직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잠시 잠깐 후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기독교인들 속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사역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께서 마귀 발아래서 살던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삼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이방인들에게도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도 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백성이 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 모두가 마지막에 가서는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인들이 처음 시작은 성령으로 거창하게 시작하였지만, 시작과 다르게 끝에 가서는 모두가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타락으로 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죄아래 갇혀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방인들이 성령을 거역할 것을 미리 알고 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기독교 2천 년 역사가 지난 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의 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것입니다. 


성령과 달리 그리스도는 빛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죄악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을 통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빛(영)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마음속을 비추게 되면, 그제서야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 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런 체험은 직접 경혐해 보지 않고 서는 누구도 이런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에 "받은 자 외에는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보지 않고 서는 이런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기성교회에서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인 줄 알았던 분들이, 이곳에 와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자,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원수 되는 짓만 골라 했던가를 깨닫고,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면, 모두가 바울과 같은 참회의 고백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그동안 안하무인으로 신앙생활 했던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 줄 모릅니다. 마음속에 죄악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그것도 겨우 육신적으로 아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 보니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모두가 육신으로 지은 죄만 고백하고 맙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회개하는 것도 모두가 육신적인 죄만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령 아래서는 자신의 속을 모르다 보니 이런 정도의 회개밖에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자신의 마음속을 비추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 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래 글들은 본 교회에서 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유대인의 구원과 기독교인의 구원이 어떻게 다른지, 각자가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성경 본문을 가지고 각자가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본인들 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똑같은 내용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약간씩 다르게 설명하고 있지만 복음의 목적은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곳에 계신 사역자들 역시 똑같은 성경 말씀이지만, 그동안 자신이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약간씩 다르지만,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목적은 같습니다.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점을 참고하고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실명을 쓰지 않고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을 인용한 것은, 본인들이 나중에 사역할 때 자신의 이름이 도용 되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서, 부득히 이런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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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반석

등록일
2023-12-01 20:45
조회
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