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마태복음10:34-39

제목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 하니라!”말씀 하시고 있다.

 

예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자신을 낳아준 부모라도 예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고아들이나 딸이라도 예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육신의 부모나 자식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신의 죄악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을 사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육신의 부모나 자식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를 두고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세를 오직 예수에게만 허락하셨다. 이에 따라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은 예수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죄가 사해지게 된다. 그래서 부모나 자식보다 예수를 더 사랑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음 글을 보면 우리가 왜 예수를 사랑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였다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누가복음7:36-39)

 

예수께서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누가복음7:40-47).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예수를 자기 집에 초청해 놓고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이는 그가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예수를 멸시하며 천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동네에서 죄인으로 불리던 한 여인은 눈물로 예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겼다고 말하고 있다이는 그 여인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알았기에 눈물로 예수 발을 씻겼던 것이다이를 보고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고 말씀하신다. 당시는 창녀나 세리를 죄인으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 여인 또한 창녀였을 것이다. 자신의 의롭게 여긴 바리새인은 결국 천국의 주인 앞에서 창녀만도 못한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서 예수를 천대하고 멸시했던 바리새인은 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죄를 하나도 탕감받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이런 의미에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그러나 오늘날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예수보다는 부모나 자식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죄가 왕노릇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죽은 영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보다는 부모나 자식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왕노릇 하고 있는 죽은 영은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를 엄청 미워한다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께서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딸과 어미가 불화하게 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불화하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죽은 영은 서로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왕노릇 하던 죽은 영이 어쩔 수 없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떠나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죽은 영의 입장에서는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을 자기 수하에 두고 마음대로 부려먹었는데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 역시 ‘죽은 영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속이는 바람에당시 예수 믿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죽은 영’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속이는 바람에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버려야 예수를 믿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을 버려야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에 반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는 신앙생활은 목숨을 버릴 필요도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이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된다. 현제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는, 자신의 옛 구습을 버리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이 가능하다. 그래서 초대교회로부터 현제까지 2천년 동안 기독교 역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의 속사람이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생명이 들어가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생명을 주러 오셨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옛 사람)을 버려야만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조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예수를 사랑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이 예수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면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가 모두 해결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가 걷잡을 수 없이 타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보니까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마음으로 믿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성경이 말하고 있듯이,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이미 예수로부터 모든 죄를 탕감 받은 자이다죄를 탕감 받은 자의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계신다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는 절대 타락으로 갈 수 없다이는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인간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이렇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좋은 예로 율법아래 살던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에야 비로소 지나온 과거의 삶을 버리고 온전케 될 수 있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에야 비로소 과거의 삶을 버리고 바울처럼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이 말씀은 예수께서 손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던 것처럼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 역시 자기가 못 박혀 죽을 십자가를 직접 짊어지고 쫓아야 한다다시 말해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야 한다그러나 기독교인들로서는 이 말씀 또한 실천할 수가 없다그 이유는 목숨이 하나뿐인 기독교인들로서는 자기 목숨을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단 말인가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가능하다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나의 옛 사람이 죽고 없기 때문에그때부터는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다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설사 죽더라도 그리스도가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서는 자신의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 법아래서는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성령의 법아래서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게 느껴진다그 이유는 성령은 기독교인들을 거듭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거듭났다는 말은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인데성령을 받아도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귀 발아래 살던 자가 하나님 백성으로 신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죄 아래 살던 인간이 다시 태어나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주인노릇을 하던 죽은 영을 쫓아내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엣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이다그러나 성령만 받아서는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부모나 자식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는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예수를 부모나 자식보다 훨씬 더 사랑하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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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2-26 19:59
조회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