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제자들이나, 사도 바울이 기록한 신약성경을 보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다. 구약은 그 이전에 선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말씀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신앙생활 하던 책이다. 그러니까 성경의 기록은 앞전 세대 사람들이 기록한 말씀을 뒤에 오는 뒷전 세대사람들이 보고서 신앙생활 했던 것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것은 가령, 모세가 자신이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성경을 기록했다 할지라도 후에 일어날 일들까지는 모세도 알 수 없으므로 기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성령의 감동으로 어림잡아 기록할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사실까지는 기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당대의 선지자나 성경 기록자들이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겪고 체험한 것밖에는 기록할 수밖에 없다보니, 뒤에 오는 뒷전 세대는 자동적으로 앞전 세대가 기록한 성경을 자기 현실에 맞게 받아들이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입증해주는 좋은 예가 바로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환경(율법 아래서의 생활)에서 신앙생활 한 사람들이 아닌데도, 마치 자신들을 사도바울과 같은 입장에다 놓고 성경을 보게 되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롭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바울은 히브리인으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성경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면서 자신을 율법 아래 살던 히브리인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방인들은 율법도 없이 살아온 이방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율법 아래 살던 바울(모든 유대인들 포함)이 예수를 믿는 것과 율법도 없이 살아가던 이방인이 예수를 믿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기독교인들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이단시 하며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온전한 분으로 영적인 주님이 오셔야 한다. 그래야만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주님을 기준점으로 하여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자기 교파가 정통이다. 또는 자기 교회에 와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허황된 말들을 할 수가 없다. 그런 모든 문제들을 일순간에 해소하실 분은 오로지 영적인 주님 한분밖에 안 계신다.


따라서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현재의 기독교인들이 사도들이나,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영적인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기독교인 어떤 누구도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성경을 풀어 해석한다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생각밖에 더 나올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바울이 기록한 갈라디아서 5:16-24말씀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풀어 해석할 때는 거의 모든 목사들이 성령을 따라 살라고 성도들에게 가르칠 것이다. 성령을 따라 살아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이 과연 성령을 제대로 따라 살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이 성령이 충만하여 한 순간은 성령을 따라 살지 몰라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것을 쫓아 살다보면, 결국 육신의 소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육신에게 져서 육신의 소욕을 쫓아 살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정확한 모습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말씀으로 자신을 위로 내지는 확정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하는 말씀으로 자신을 스스로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로 확정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자신이 불안했으면 이 말씀들을 자꾸만 떠올려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안 받으려 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이런 말씀들은 죽어도 안 보려고 하거나 그냥 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왜 그냥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하는가 하면 자기 자신이 그런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억지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열린 입으로 말은 잘하고 있지만,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들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속을 숨기고 겉으로 사랑과 희락과 자비와 온유를 드러낸답시고, 믿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얼마나 겸손한 척 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자신의 신분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제까지 속으로 참았던 울분이라도 토해내듯이 불신자보다도 더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현 주소이다. 누가 이것을 숨길 수 있으랴!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주님이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자신을 숨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주님 앞에서 자신 속에 악이 들어 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영적인 주님으로부터 긍휼함을 입어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고 싶은 사람은 영적인 주님 앞으로 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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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1:09
조회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