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은 땅에서부터 출발한 신앙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할 때부터 그들의 운명은 시작된다.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지역은 우상이 들끓던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이다.


그 후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도작하여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연단을 받아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가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장자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마고 약속하신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으므로 버림을 받아 영적인 축복은 받지 못하였으나, 그도 아브라함의 자녀인 것을 한나님께서 가상히 여겨 땅에서 잘 사는 축복은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시마고 약속한 자녀로서 사라나이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태문이 막혀 도저히 아기를 낳을 수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라의 막혔던 태문을 열고 아기를 낳게 하셨으니, 그가 바로 약속의 태어난 이삭인 것이다. 이삭은 다시 리브가를 통해서 자식을 낳게 되는데, 리브가의 뱃속에는 쌍둥이가 잉태되어 두국민이 리브가의 뱃속에서 뛰어 놀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축복이 인간의 노력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장자인 에서는 버림을 당하고 동생인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인간들 입장에서 보면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선택에 하자 있을 수 없다. 그 이유 역시, 모든 인간은 죄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에서역시 이스마엘처럼 영적인 축복은 받지 못하였으나, 세상에서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아 탄탄한 입지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셨다. 그들의 후예들이 바로 오늘날 붉은 깃발아래 모여 사는 공산당들이다. 아직도 소련과 중국이 거대공산당으로 남아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에서를 닮아서 야곱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강하다. 같은 민족임에도 이북 공산당만 봐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야곱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12지파로 나뉘어서 성민(聖民) 이스라엘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받은 하나님의 유일한 성민(聖民)들이라 하여 그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 취급하며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들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며 사는 민족이라 하여 얼마나 자신들의 의가 충만했던지 주변 국가들을 아예 인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 살던 그들 앞에 이삭의 예표로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가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를 거들떠보지도 안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유인 즉은, 자신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미 거룩한 백성들이요 또한 율법으로도 흠이 없는 자들이라 하여, 자신들에게서는 아무런 흠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겉(육체)만 씻을 것을 가지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걸로 알고 있었으나, 예수께서 주장하시는 내용은 “너희들 마음속이 이미 더럽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급기야는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예수를 죽이는데 동조를 하고 말았다. 그들이 정말로 흠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너희들 마음속이 더럽다”고 했다하여 무죄한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들은 겉만 번지르르 했지, 그들 마음속은 전혀 깨끗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을 때 어떻게 구원이 이루어지는 가를 그림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그림이다.





이에 비하여 영적인 백성들(현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유대인들과 반대로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구원이다.(이것이 영적인 백성들이 온전케 되는 방법이다).





기독교인들의 구원 과정은 유대인들과는 반대로 속에서(영-마음-몸) 밖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몸 밖에서부터(몸-마음-영)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악을 깨닫는 자가 예수를 믿게 될 때, 마음속의 죄악이 사라지고,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피흘려 주신 공로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이 마귀 발아래서 해방을 받게 된다.

이런 과정을 모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꾸만 자신들을 유대인들과 동등선상에 갖다 놓고 성경을 해석하다보니 자꾸만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모두가 당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기록한 것이며,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입었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 역시 성경을 기록할 때는 자신이 유대인 입장에서 온전케 된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더욱더 자신들에게 속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이런 문제를 모두 풀어주시고, 해결해 주실 분으로 이방인들에게도 영적인 주님이 오셔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주님이 오셔야 이방인들도 그동안 누가 옳바르게 신앙생활 했는지 알 수가 있고, 또한 누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는지 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온전치 못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누가 정통이다. 누가 이단이다. 하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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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1:10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