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남(신앙간증1)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남(신앙간증1)

 

출생의 비밀!

 

나는 전기 불도 들어오지 않는 두메산골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시고 아래로는 남동생(쌍둥이)과 여동생이 한 명이 있다. 당시는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로 자식이 몇 명씩 죽어 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로 내 위로 형이 한 명 죽고 아래로 여동생 둘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는 나라 전체가 가난에 허덕이던 때라, 우리 집 같은 경우 농사지을 변변한 밭뙈기 하나 없다 보니 더더욱 가난에 쪼들려 살아야 했다.

 

겨울에는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고,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모든 양식이 떨어져 들판에 나가 쑥이나 나물을 뜯어다 죽을 쑤어 먹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늦은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들 때면 그때는 들에 있는 풀들도 잎이 빳빳하여 먹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덜 익은 보리를 베어다 솥에 삶은 후 멍석에 깔아놓고 비비면 푸른색 보리 알맹이가 빠져나오는데, 그걸 모아서 죽을 쑤어 먹었다. 그걸 먹고 화장실에 가면 소화가 되지 않아 그대로 대변으로 배출되고 만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보릿고개란 말이 결코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다.

 

나는 다섯 살 무렵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시골은 오일장이라고 해서 보통 닷새 만에 한 번씩 장이 열린다. 내가 살던 산골 마을에서 장에 한 번씩 가려면 산길을 따라 약 십오리(6km)를 걸어가야 했다. 그날도 또래 아이들하고 놀고 있는데,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장에 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따라오지 말라며 길에 있던 막대기를 집어 들고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막무가내로 따라가겠다며 울며불며 매달렸다. 하도 울며불며 매달리자, 어머니도 포기하셨는지 너 절대 다리 아프다며 엎어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겨우 어머니를 따라나설 수 있었다.

 

산골에서 산토끼와 발맞추며 살던 내가 난생처음 장 구경을 하게 되었으니, 내 눈에는 온통 신기한 물건들 뿐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구경하느라 앞서가던 어머니 손을 몇 번씩이나 놓쳤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큰 소리로 불러댔다. 어느 좌판대 앞을 지나가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사탕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그것이 햇볕을 받으니까 더욱더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먹고 싶던지 작은 조각하나를 집어서 얼른 입속에 넣었다. 그러자 입안이 타들어 가면서 불이 난 것처럼 따갑고 고통이 느껴졌다. 혀가 오그라드는 고통 때문에 삼키지는 못하고 큰 소리로 울며 뱉어냈다. 내가 우는 소리에 앞서가던 어머니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나를 우물가로 데려가서 연신 혓바닥을 물로 씻어냈다. 그래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날 내가 먹었던 것은 사탕이 아니라, 양잿물(청산가리)이었다. 당시는 누런 옥양목(목화로 짠 옷감)을 양잿물을 넣고 삶으면 하얗게 되는데, 그런 양잿물을 오일장에 가면 길거리 좌판대에서 팔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사탕인 줄 알고 주워 먹었던 것이다. 입술이 모두 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런데도 우리 어머니는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당시는 병원이라고 해봐야 보건소가 전부였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보건소에 가면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무지해서 그런 건지 보건소에도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변변한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겨울만 되면 윗입술이 터져 피가 나면 그때의 고통이 떠오른다. 나는 그날 이후로 사탕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 위험한 독극물을 먹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나는 그 후에도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겪었다. 한번은 추석 때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 다녀오다가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나서 우리 가족 전체가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도 자동차만 폐차되었을 뿐 가족들은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운이 좋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운명이 너무도 기구해서 주님을 만난 후, 나는 그런 사건들 하나하나를 열거하면서 주님께 물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네가 죽을 고비를 맞이했을 때마다 내가 너를 도와 살려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신앙생활도 안 했던 때라 주님 말씀이 궁금하여 또 물었다. ‘그때 나는 신앙생활도 안 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9:15).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를 미리 택정하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장차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자 바울의 말이 떠올랐다. 바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심지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자였으나,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일방적으로 그를 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다. 나도 이것이 궁금하여 그럼 저도 택함을 받은 자인가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미 너희 어머님 뱃속에서부터 나를 택했다는 것이다. 주님의 이런 말씀을 듣는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관데 나 같은 자를 택하셨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나같이 지지리도 못난 자를 택하였을까? 지금도 나는 그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절대 나를 자랑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일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넓은 세계에 첫발을 내딛다.

 

집이 가난하여 나는 국민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당시는 중학교도 시험 봐서 들어가던 때라 6학년이 되면 학교에 남아서 늦은 시간까지 과외 공부를 했다. 나도 중학교에 들어갈 요량으로 학교에 남아서 늦은 시간까지 과외 공부를 했다. 학교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나를 보고 부모님도 별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생각하여 더욱더 공부에 열심을 냈다. 그런데 막상 중학교 들어가기 위해 원서를 내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펄쩍 뛰시며 못 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과외 공부할 때는 아무 말씀 안 하셨냐고 물었더니,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말을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너무도 큰 상처를 받고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았다. 울며불며 사정을 해보았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어머니의 단호함에 나에 첫 의지가 꺾이고 말았다. 어머니도 당신의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마음 또한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당시 왜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는지, 내가 주의 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부모님의 농사일도 도왔다. 하루는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중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하교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럽던지 서러움에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야 했다. 그렇게 시골에서 3년을 보내다가 17세가 되던 해, 시골에서 이렇게 살아서는 도저히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겨우 차비만 마련하여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였다. 당시 서울에는 누님이 살고 있어서 누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누님도 형편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곧장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당시 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하고 받는 월급이 고작 1,500원이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도 필요한 것을 사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이 없었다. 공장 생활로는 도저히 돈을 벌 수가 없다는 생각에 공장 생활을 그만두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일도 해보았지만, 나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급학교의 졸업장이 없다 보니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계획!

 

70년도에는 우리나라에 중동 붐이 일어나 너도나도 돈을 벌기 위해 중동으로 향했다. 당시 중동에 나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너도나도 나가려고 경쟁하다 보니 중간에 브로커들이 끼어들어 뒷돈을 요구했다. 뒷돈이라도 주고 중동에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 우리나라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들도 아마 브로커에게 상당한 뒷돈을 주고 들어오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 나도 중동에 나가고 싶어 모 건설사에 서류를 냈다. 그랬더니 시험 날짜를 정해주고 어느 장소로 오리고 한다.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그리고 면접을 통해서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는 것이다.

 

그날 약 153명이 시험을 보러 왔는데 그중에서 3명만 뽑는다는 것이다. 나는 3명만 뽑는다는 말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그 이유는 나보다 월등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1교시가 끝나고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는데, 누군가 화장실 안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니까 시험관하고 수험생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둘이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나 싶어 아무 생각 없이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까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험관이 갑자기 2명을 더 늘려 5명을 뽑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지만, 시험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고 나가 버렸다.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모두 마치고 나자, 남은 인원이 3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 중에 내가 끼어 있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마지막에 면접시험을 보는데, 아까 그 시험관이 자꾸만 나에게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서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드디어 합격자 명단이 게시판에 붙었다. 그런데 그 다섯 명 중에 내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그 다섯 명 중에는 아까 화장실에서 시험관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 사람도 명단에 같이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을 보자 약간의 퍼즐이 맞추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를 의심할 수도 없었다.

 

그날 합격자들 다섯 명이 비행기를 같이 탈 동기들이라며 다방에 모였다. 그리고는 각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사실대로 말하자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보니 모두가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고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묻기를 당신은 얼마를 주고 왔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주고 오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러면 누구 백으로 왔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거 잘 모른다고 했더니, 나에게 거짓말한다고 되려 핀잔을 주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나도 내가 어떻게 합격이 됐는지 영문을 몰라 무척 궁금했다. 그리하여 주님을 만난 후에 이것이 너무도 궁금하여 주님께 물어봤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화장실에서 그 시험관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일부러 너에게 보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험관이 자꾸만 너에게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주님의 너무도 놀라운 말씀에 나는 당시 신앙생활도 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미 너는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해준 여자와 결혼을 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여자와 결혼하면 앞으로 주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헤어지게 만들기 위해서 중동에 보내셨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사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 말도 믿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못 하실 일이 없으시다. 따라서 사람을 쓰시는 일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나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나도 이런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다.

 

사우디에서 36개월 동안 일한 돈으로 집이라도 하나 장만해 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사우디에서 알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는 법이 없어도 살아갈 사람처럼 선해 보였다. 나보다 열 살은 너 먹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형님으로 불렀다. 형님이라고 불리던 그 사람이 인천 부평에 있는 새로 지은 4층 집을 소개하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나는 당시 전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날마다 서울까지 일 보러 다닐 수가 없어서 그를 믿고 집 살 돈을 그에게 전부 맡겼다. 그런데 그 사람이 중간에 그만 돈을 꿀꺽하고 만 것이다.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하더니만, 나는 큰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이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결국 사우디에서 번 돈은 모두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돈은 잃었지만, 인생 공부는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절대 사람을 믿지 말자고 맹세했건만, 귀가 얇아서인지 나는 그 뒤로도 여러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여 가진 것 모두를 탈탈 털리고 말았다.

 

그렇게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난 후 나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공사판에 뛰어들어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보험회사에 들어가서 세일즈맨도 해보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도 해보았다. 30도 안 된 나이에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덧 나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어 맞선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시골에 계신 우리 어머니는 나보다 4살 아래인 소띠 아가씨를 만나야 된다며 신신당부하였다. 만약 그렇지 않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40이 넘으면 홀아비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마음에 걸려 정말로 나는 소띠 아가씨가 아니면 만나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그런데 이 또한 모두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이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나는 당시 큰 공장에 책임자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장모 되실 분이 그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장모님 귀에도 아마 내가 소띠 아가씨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들어갔던지 마침, 당신 딸이 소띠인 것을 알고 나에게 소개한 것이다. 장모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따님 역시 모태신앙이었다. 당시 나는 무종교였지만, 우리 집은 지독히도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이었다. 다른 어느 집과는 다르게 우리 어머니는 새벽마다 정한 수를 떠 놓고 지극정성으로 천지신명께 빌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 어머니가 예수를 알았더라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 믿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든 나와 아내는 도저히 만나지 못할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결혼생활은 그런대로 순탄했다. 결혼 후 아내가 나에게 교회에 함께 나갈 것을 몇 번 권유하였다. 그때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의 권유를 뿌리칠 수가 없어서 아내를 따라 몇 번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강단에서 목사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너무도 시시콜콜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온통 세상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다른 교회를 가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보고는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끈질기게 교회에 함께 나갈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내가 당신들보다도 더 잘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뒤로 아내는 다시는 나에게 교회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우리의 결혼생활은 행복하게 이어져 갔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였는데 몸이 허약하여 그만 중간에 유산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후로 두 살 터울로 딸과 아들을 두게 되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941223일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큰 아이가 동네 병원에서 잘못 지어준 약을 먹고 의식을 잃어가자, 나는 아이를 둘러업고 집에서 가까운 동작구 소재 보라매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밀히 말하면 어른이 먹어야 할 약을 어린아이게 잘못 지어준 의료사고였다. 병원에 도착한 우리 아이는 점점 더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불명 상태로 가고 있었다. 금방 깨어날 줄 알았던 아이가 해를 넘겨도 깨어날 줄 몰랐다. 담당 의사는 계속해서 위험한 상태라고만 말해줄 뿐 기다리라고 말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입원한 지 약 2주 정도가 되어 담당 의사의 호출을 받고 달려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담당 의사는 자기 소견으로는 고열로 인해 아이가 뇌사상태에 이르게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담당 의사로부터 뇌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그만 나도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남들에게나 일어날 줄 알았던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때 부모로서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아이가 잘못되면 나도 같이 따라 죽으리라 맘먹고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뇌사 판정을 받은 지 한 달이 넘어가자, 딸아이의 장기가 상해 들어가는 것이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딸아이의 옆에 가면 역겨운 냄새가 코끝을 타고 들어왔다. 그래도 내 자식이라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잡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병원 측에서는 가망도 없는 아이를 왜 이렇게 방치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하루는 담당 의사가 나에게 애원하는 조로 아이를 제발 병원에서 퇴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타들어 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담당 의사에게 누가 병원비 떼어먹을까 봐 그러냐?’고 도리어 화를 냈다. 그러나 속으로는 심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후 나는 담당 의사만 보면 병원 화장실로 숨어야 했다. 나만 보면 퇴원해 달라는 말을 하기 때문에, 그 말이 듣기 싫어서 일부러 화장실로 숨었다. 화장실에 숨어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50여 일이 지나고 있었다.

 

아이를 중환자실에 눕혀놓고 50여 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찾게 된 이유는 뇌사라면 세상 의학이나 과학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중환자실은 아무 때나 면회가 되는 곳이 아니라서, 중환자실 문이 열리기까지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면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하는 기도를 수도 없이 했다.

 

당시는 내가 담배도 피우고 있던 때라 우리 아이를 만나러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로 먼저 달려가서 물로 가글을 하였다. 당시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은 7이요 마귀는 6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의자에 앉을 때도 반드시 일곱 번째 의자에 앉아 기도하게 되었고, 가글을 할 때도 반드시 일곱 번씩 가글을 하였다. 혹시 숫자를 세다 잊어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길거리를 방황하던 그때 길에서 우연히 순대 장사하던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00 교회 집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그분에게 나의 속사정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다. 그분은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더니 자신도 위암 말기 환자였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이번 일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것 같다며, 나에게 무조건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보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그분 말만 믿고 기도원에 올라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아이가 잘못되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원에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제때 밥을 먹지 못하고 굶으면 뒷골이 쪼개지는 통증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짓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죽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게 느껴졌다. 당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일부러 나에게 보낸 것이었다.

 

길에서 만났던 그 사람과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기도원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내는 펄쩍 뛰면서 신앙도 없는 사람이 그런데 가면 오히려 귀신이 당신 마음속에 들어가서 당신까지 미치게 한다며 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국에 나 혼자 살겠다고 자식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어야 되겠냐며, 지금 이런 기분으로는 귀신이라도 씹어 먹을 판국이니까 나의 가는 길을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나의 단호한 어조에 아내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원에 올라가다.

 

나의 성격을 알기에 아내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울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심방을 받고 월요일에 가라는 것이다. 나는 아내의 눈물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심방을 받고 월요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기도원에 가기 전날 밤에 꿈을 꾸는데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 속에 사람 얼굴이 나타나더니, 3+4라는 숫자를 주면서 기도원에 가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너무도 무섭고 두려워 벌벌 떨면서 모기만 한 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였다.

 

월요일이 되어 아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과 장로 권사 집사 여러분들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다과를 먹는데, 나에게 자꾸만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아침부터 금식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단호히 뿌리쳤다. 그러고는 곧장 길에서 만났던 그분이 알려준 대로 경기도 00리에 있는 어느 기도원에 올라갔다. 처음에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하나님! 우리 아이 좀 제발 살려 주세요. 그리고 나 좀 만나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결국 내가 하던 기도는 모두 하나님께 서원하는 기도가 되고 말았다.

 

자신과의 싸움!

 

기도원에 올라와 사흘 동안은 배고픔도 참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뒷골이 땅기고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거기다 배고픔의 시험까지 계속되었다. 기도원 선교센터 입구에 보면 자판기가 한 대 있는데, 내 생각 속에서는 자판기에 있는 율무차나 수프는 모두 물로 된 것이기 때문에 먹어도 괜찮다며 계속해서 먹으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 시험에 넘어가 정말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서 자판기에 넣었다 뺐다는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끝까지 자판기 수프는 먹지 않았다. 먹으면 금식이 실패로 끝나게 되어 우리 아이가 잘못될 것만 같았기에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렇게 3일째 되던 오후, 그날도 기도굴에 들어가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막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지난날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기도굴 바닥에 흥건하게 고였다. 몇 시간을 그렇게 울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끼니를 걸러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던 통증도 모두 사라졌다. 신기했다. 기분도 날아갈 듯 상쾌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신이 정말 살아계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딱 부러지게 손에 잡힐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처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꿀잠을 잤다. 목요일이 되어 기도원을 내려가는 날이다. 당시 기분으로는 기도원을 내려가면 당장에 우리 아이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렇게 34일의 금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 기대를 하고 나는 그날 저녁 우리 아이가 있는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 아이에게서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아이에게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나는 더 큰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러면 그렇지 무슨 하나님이 살아 계시겠냐?’ 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기도원에 있을 때만 해도 뭔가 금방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는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다시 눈앞이 캄캄했다. 내 마음은 다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 원장이 어느 교회 전도사 한 분을 모시고 왔다. 그분 역시 위암 환자로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3일 동안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길에서 만났던 그분도 위암 환자였는데, 그분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고침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목요일에 기도원을 내려와 금요일을 지나고 토요일을 지나도 우리 아이에게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비의 마음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만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느끼는 고통은 차리라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같이 임한 성령!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기도원을 내려와서도 아이가 살아날 가망이 보이지 않자, 나는 다시 실의에 빠져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3일을 지나고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아내가 주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 인기척에 놀라 잠을 깼다. 그런데 내 몸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내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면서 불덩이처럼 변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내에게 성경책을 달라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손에 잡히는 대로 성경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의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할 수 없도다”(8:16-18).

 

옛날 장모님이 쓰시던 성경책이라 세로로 써진 글씨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글씨가 손가락 마디보다 더 굵은 활자가 되어 내 눈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이다.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나에게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었다. 나중에야 이것이 성령 세례인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도원에 가기 전날 밤 꿈에 3+4라는 숫자를 주신 것이, 결국 7일 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겠다는 암시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천지가 개벽할 사건!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자, ‘이제 우리 아이는 살았다하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밤사이에 정말 천지가 개벽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가 1995226일 주일 새벽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아내와 나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문이 열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우리 아이를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내 눈을 열어 우리 아이의 신경세포 조직 하나하나를 모두 보여주셨다. 그때 우리 아이의 신경세포는 모두 죽어 있었다. 뇌세포도 모두 멈추어 있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갑자기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강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이상하여 그것을 멈추려 하였지만 꼬부라진 내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이 방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일주일 만에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로 기도하자! 간호사들이 혜림(아이 이름)이 아빠가 이제 미쳐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다. 아내가 간호사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지만,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하나님의 기적!

 

그렇게 기도하고 3일째 되던 날, 죽은 시체나 다름없던 우리 아이의 손과 발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뇌 기능이 멈추자, 장기가 손상되어 역겨운 냄새를 풍기던 것들도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 아이에게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아내의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동안 병원을 드나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뇌가 손상되면 장기부터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냄새가 심하게 난다. 그것 때문에 병원 측에서는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며 아이를 퇴원시키라며 몇 번씩이나 독촉을 해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담당 의사를 피해 화장실로 숨어야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반 동안을 담당 의사와 숨바꼭질하면서 지내야 했던, 그때가 너무도 서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병원 측에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살리라!

 

기도를 받은 후 우리 아이에게서 장기 썩는 냄새가 모두 사라지자, 병원 측에서도 더 이상 나에게 아이를 퇴원시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이다. 인간은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할 수 없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다녔다. 나만 보면 그토록 우리 아이를 퇴원시키라고 말하던 그 의사도 이제는, 나만 보면 도리어 화장실로 도망가 숨기 바빴다. 내가 그 의사만 보면 붙잡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하느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에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미친 듯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에게 전하고 다녔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우리 아이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병원 측에서는 이걸 인정하게 되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까 봐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임을 믿었다. 이 세상 어떤 과학이나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단번에 해결하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성령)과 마귀와 귀신의 존재

 

그 후 나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과 더 나아가 마귀와 귀신이 존재 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생사화복이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천지창조의 비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많이 부어주셔서, 나처럼 고통 가운데 빠져 있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이제 나는 오직 하나님만 위해서 살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그러면서 나의 작은 계획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갔다. 내 소박한 꿈은 어렵게 목회하시는 주의 종들과 전국의 미자립 교회들을 물질로 돕는 일이었다.

 

우리 아이가 깨어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그해 4월 중순쯤에 우리 아이에게서 갑자기 심정지 상태가 일어났다. 병원 측으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왔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즉시 정상으로 되돌려주셔서 다시 심장이 뛰게 해주셨다. 우리 부부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상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6개월이 되어갈 무렵 병원에서 또다시 호출이 왔다. 우리 아이에게서 이상한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병원으로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네 딸을 데려가겠다.

 

나는 아내만 병원으로 보내놓고, 교회로 달려갔다. 그날 밤늦은 시간에 교회 강대상 밑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지 이마 땀방울이 맺히도록 두 시간을 넘게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그만하라! 이제 네 딸을 데려가겠다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놀라! ‘왜 벌써 데려가려고 그러십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가 아이를 키우면 학교도 보내야 하고, 시집도 보내야 하는데 왜 땅에서 힘들게 살려고 그러느냐? 내가 네 딸을 데려갈 테니 너는 내가 너에게 맡긴 일을 다 마치고 천국에 와서 네 딸을 만나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 음성을 듣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는 그 자리에 꼬꾸라져 잠깐 동안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에서 깨어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들이 전기 충격기로 우리 아이의 심장을 뛰게 하려고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의사들에게 다가가 인제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그 말을 들은 의사들이 놀라 어리둥절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그만둘 것을 의사들에게 요청했다. 그제야 의사들이 들고 있던 전기 충격기를 내려놓으며 우리 아이의 사망 시간을 체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 아이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빠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고 말았다.

 

아이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 말하던 나였지만, 성령께서 나를 강하게 붙잡아 주셨던지 아이의 장례를 치르는 내내 마음이 담담하였다. 그런 나를 보면서 교회 성도들이 지독한 사람이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때 왜 우리 아이가 천국 가는데 울고 그러십니까? 도리어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인들이 내 말에 어이가 없던지 더 이상 나하고 말도 섞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토록 담담하던 내 마음도 우리 아이와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에서는 눈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 우리 아이의 영혼은 하늘로 가고 육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가 이 땅에 올 때는 순서 있게 오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너는 나의 부활의 증인이라!

 

그 후 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서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역사하고 계셨다. 나는 또다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겪게 되었다. 성령 세례를 받고 약 7개월쯤 되던 때, 그러니까 95930일 새벽 그날도 새벽 기도를 가기 위해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다. 그런데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이 온 방 안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는데 허벅지가 내 몸뚱이보다 더 굵은 사람들(천사들로 추측)이 내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내가 입고 있던 세상 옷들을 모두 벗기더니,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입던 에봇(통으로 된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이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내 앞에 어떤 젊은 청년이 하나가 누워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죽었다는데 그분 몸에서는 엄청난 광채가 나고 있었다. 천사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나를 강제로 그분 앞에 무릎을 꿇리는 것이다. 나는 무서워 벌벌 떨며 누워 계신 그분을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볼 뿐, 그분 몸에서 나는 광채 때문에 똑바로 눈을 뜨고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분 몸에서 나는 광채가 얼마나 밝던지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눈이 멀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그분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분이 일어나 앉더니,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이 너는 나의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당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몰랐다. 그분의 몸에서 나는 광채 때문에 나는 그분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분 몸에서 나던 빛이 내 몸 안으로 쏘~옥 빨려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는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방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살을 꼬집어 보기도 하고, 내 머리를 툭툭 쳐 보기도 하였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나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기도원에 오르기 전날 밤 꿈에 3+4라는 숫자를 통해 성령께서 나에게 오실 것을 미리 알려주신 다음 7일 만에 성령께서 나에게 찾아오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경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주셨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의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할 수 없도다이 말은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찾아오시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성령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실 것을 미리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계셨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연히 나에게 오신 것이 아니고, 이미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후에 나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나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다.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신 이후로 내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느꼈다. 누군가 내 속에서 나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령을 받았을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그리스도가 들어오신 후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날 새벽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내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신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 아래 살 때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성령 아래 살 때는 나의 자아가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내 뜻대로 살았다. 이런 사실은 그리스도가 내 속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었다. 그날 새벽 기도를 다녀온 우리 집사람에게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었지만, 우리 집사람은 성령이 역사하신 것으로만 치부할 뿐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바울이 받은 자 외에는 알 수 없다고 하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게 된 분명한 사실 하나는, 성령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으시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 아래 가두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신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내가 유능해서도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영은 육체를 입어야 말을 할 수 있고 또한 예수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부득불 인간의 육체를 입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이방인 중에서 누군가의 육체를 입어야 했다. 그런데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하나님 뜻에 따라 내가 거기에 쓰임 받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보면 큰 영광이지만, 부족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사실이 두렵고 떨리기만 하다. 이런 내용은 기독교인들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180도로 변한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삼으시고...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를 도구 삼아 이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바울을 도구 삼아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예수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리스도의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나니까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놔두고 어찌 나같이 무식하고 못난 자를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인지, 몇 번이나 나를 부인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이를 거부할 권리가 내게는 없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되어진 일이다. 그래서 더욱더 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이라”(고전1:28-29). 바울이 했던 이 말이 너무도 실감 나게 느껴졌다.

 

간증 1편을 보신 분들은, 간증 2편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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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1-03 21:06
조회
245

댓글 1

bansuk
2024-01-06 12:41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선택하여 이방인들 앞에 사도로 보냈던 것은, 장차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다시 오시겠다는 것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에 도적같이 오시겠다는 말씀 또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역시 이삭의 예표를 통해서 오셨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 역시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하여 미리 성경에 예표로 보여주신 후에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예표로 보여 주신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예표도 없이 나타난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이 재림예수요 두 증인이요 감람나무요 보혜사 성령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표도 없이 나타난 자들은 모두가 거짓 선지자요 거짓 예수로 둔갑한 적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들이다.

누가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말하거든 위에서 말한 대로 당신은 누구의 예표를 통해서 왔냐고 한번 물어보라! 이때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지 못한 자들은 100% 거짓 영을 받은 자들이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이런 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