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거듭난자들의 이야기

자신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

제목 : 자신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
본문 : 히브리서 12 : 4

 

인간은 누구든지 죄로 인하여 땅의 것을 본질로 태어났기 때문에 땅의 것은 어느 것이라도 전부가 죄악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태어남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지만 땅의 것을 기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은 죄악의 근본인 셈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부모를 통하여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 이후로 인간은 원죄로 인하여 죄악의 지배 아래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를 많은 기독교인이 막연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가르치고 있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죄악의 원천자인 마귀를 멸하기 위한 도구로 태어났음을 알아야 한다.

 

그 근본적인 것을 하나씩 살펴보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하늘의 영들의 세계를 창조하셨고, 그 첫 번째 피조물로 천사를 만드셨는데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 만드셨으며 각각의 임무가 주어졌다. 루시엘 본인의 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자기의 위치를 이탈하여 동등 됨을 취하려고 하여서, 결국, 저주를 받아 마귀(루시퍼)가 쫓겨난 곳은, 이 광활한 우주 공간인데 영적인 존재가 육신 적인 공간에 살도록 한 것은, 대단히 저주스러운 일이다. 결국, 이 우주 공간은 마귀와 그 졸개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만드신 감옥이나 다름이 없다.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마귀의 죄를 완벽하게 드러내서 꼼짝할 수 없는 정확한 근거를 마련하여 정확한 사실을 드러내도록 하셨다. 마귀를 멸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실 것을 준비하셨다. 왜 아들을 보내셔야 하는 이유는 아들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천지 창조 시 아담을 창조했을 때에, 이미 마귀는 낌새를 알아채고 아담에게 접근하였는데, 대상을 아담 아닌 하와를 통하여 접근하고, 결국, 남편까지 끌고 들어갔다. 결국, 부부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져서 죄를 짓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을 떠난 즉시 죄가 들어오고, 그 죄가 그를 삼켜버려서 도무지 씻을 수 없는 길로 간다는 사실이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있을 수 없다. 빛이 없으면 어두움이 오듯 하나님을 떠난 즉시 죄가 그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결국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으로 인하여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원죄(原罪)라고 한다. 이 원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흠 없는 피로 인하여 원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데, 바로 예수의 피로만 해결하는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죄가 없으므로, 그 아들로 인하여 피를 마귀에게 내어 주었고, 그 결과 마귀는 이 땅의 임금 자리에서 떠나게 되고, 예수께서 죄가 없다는 증거가 바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이제 인간의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이 직접 오실 수 없기에 성령으로 인간을 주장하시게 되었다.

 

성령으로 인간을 주장하신다고 하는 의미는 인간의 영을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의 지배 아래 있게 한 것은 이제부터는 성령으로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도 성령을 따라서 살 수 없다. 그 이유 인간은 영과 혼으로 되어 있어서 영()은 성령이 주장하시지만, ()은 성령이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 아래 살고는 있지만, 그 마음(, 자아, 본질), 원래 그리스도께서 계시므로 드디어 성령의 뜻을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 수 있는데 인간의 마음속은 이미 죄악이 있으므로, 누구도 성령의 뜻을 따라 살 수 없다.

 

여기서 유대인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우리 자신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유대인은 그 조상 때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살아왔고, 유대인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살 수 있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그 율법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는데, 율법의 근본정신을 알지 못하고, 율법을 주신 뜻과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서 오직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오죽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5:20).”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 결국, 그들의 의가 되어서 아들이 왔는데도 아들을 믿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한 번도 율법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율법의 지배하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유대인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이방인들은 성경에 기록한 것을 유대인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고, 도리어 자신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며, 바울이 말하는 부분을 곡해하고, 오해하며 자신들의 마음에 맞게 판단하고 실행하고 있다. 그 좋은 증거가 성령을 받은 것을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 없다. 오신즉 인간은 즉사(卽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본질의 죄악이 그대로 있는 것을 해결한 사실이 없다. 성령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성령은 원죄를 사함 받은 증거이고, 또한, 이제부터 하나님 백성으로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부여된다. ‘영적인 율법이란 유대인은 육체에 주어진 율법인 데 반하여, 이방인들에게는 마음으로 지켜보라고 주신 율법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육체에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에, 육체의 많은 질병이 나타났지만, 이방인들은 마음으로 지키라고 주어졌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난 질병이 아닌 마음의 질병이 너무 많이 나타난 것을 오늘날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누구도 성령의 뜻을 따라서 살 수도 없고, 성령의 뜻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실 수 있는가. 그 원리를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은 그리스도가 주관하시는데, 영의 문제는 아들의 피로 인하여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혼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자신의 주인이 그리스도가 아닌 터줏대감이 있다. 그 주인은 나 스스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은 자기 뜻에 맞는 것만, 선택하려고 하는 원초적인 죽은 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자기(자아, 본질, 죽은 영)를 버리지 않으면 누구도 자신 속에 자리 잡은 자신을 알지 못한다. 세상의 적인 핑계로, 지식으로, 선함으로, 방법으로, 물질로, 권세로 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미화하고 보호하고 있으므로 자신을 스스로 볼 수 없다. 마치 거울이 있어야 얼굴을 보듯이 자아가 아닌 타인이 지적을 해주어야 자신을 볼 수 있다. 그 타인이 바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의 빛으로 자신을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의 기준은 변동하고 변질하고 바뀌고 요동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미 하나님이 기준으로 정해 놓으셨다( 14:6, 17:3 참조). 그리스도를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고 그를 믿으라고 하신다. 믿는 것은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인데( 12 : 42), 그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이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하여 듣게 된다(롬 10:17).

 

오직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행함이 나타나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것은 자기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준비하였는데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간 것을 알 수 있다. 즉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행하게 된다( 16 : 6 ~10). 다음으로 오직 세상에 관심이 없고 오직 죄와 죄인에게만 관심이 있다( 26 : 53). 또한, 오직 하나님의 뜻만 바라보고 살아간다( 26:39). 이와 같은 것을 보면, 자신은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그를 완벽하게 주장하시고 지배하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내 마음속에 있는 죽은 영(자아, 본질, 자신)이 철저하게 숨어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게 되면, 그 빛이 살길임을 알고 빛으로 나오는 자는 살 수 있으나, 빛을 피하여 숨는 자는 점점 악으로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3:16~21).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신을 본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많은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고, 자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있으므로 자기의 기준으로 보고,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기준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기준을 하나님이 세우셨는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방 기독교인들을 보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관점에서 편리하게 만든 예수를 믿고 있다.

 

제자 시몬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어부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전혀 의외의 명령을 하신다.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 5 : 4~6).” 자신의 경험과 연륜이 그리스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시몬 베드로는 자신을 내려놓고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을 옮겼다. 결과는 대단했다.

 

문제는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경험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과 싸움이다. 여기서 이긴 자는 바로 그리스도가 그 마음을 주장하시지만, 진자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더욱 자신의 방호벽을 두껍게 쌓게 된다. 결국

공유하기
등록자

벧엘

등록일
2023-11-30 20:37
조회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