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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들의 이야기

율법의 한계와 율법의 완성자로 오시는 그리스도

율법의 한계와 율법의 완성자로 오시는 그리스도

요한복음5:1-9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서 천사가 와서 물을 동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비참한 상황은 율법 아래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고달픈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은 율법의 멍에 아래서 힘들고 고달픈 삶의 연속이었다.

 

율법을 심하게 어긴 자들은 육체가 병들어 평생을 율법의 저주로 고통을 치루어야 했으며, 율법의 중한 것을 어기지 않아 다행히 육체가 병들지 않은 자들 역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억압감으로 마음에 짐을 지고 살아야 했다. 또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자들은 몸이 병들지 않아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킨 것으로 착각하여 율법을 지켰다는 로 충만해져 있었다.

 

이것이 복음이 오기 전 율법 아래 사는 인간들의 한계다. 복음이 오기 전에는 이처럼 법을 지키려고 거기에 매여 자유를 얻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어느 누구도 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 자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율법을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이 율법을 거역하게 되면 율법의 저주로 인해 육체가 병들게 된다. 인간의 법은 사람들 눈만 피하면 되지만 하나님 법을 어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형벌로 악한 영을 허용해버리시기 때문에 악한 영이 그를 지배하게 되어 몸이 병들고 고통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백성을 통제할 길이 없는 것이다.

 

14절에 보면 38년 된 병자 역시 율법을 어겨서 병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는 말씀은 그가 율법을 어겨서 병이 들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죄라는 것은 바로 율법을 거역한 죄를 말한다. 율법을 거역하면 몸이 병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율법의 저주라는 것이다. 율법의 저주로 인해 생기는 병은 세상의학으로 고칠 수 없고 반드시 율법의 완성자인 예수께서 오셔서 해결하셔야 한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천사가 가끔 내려 와서 고쳐주고 있었던 것은 죄사함의 권세가 없는 천사가 해준 것이기 때문에 육체의 병만 나을 뿐 죄에서는 빠져 나올 수 없다. 따라서 구원은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성령의 은사자가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 것과 같다. 병 고침은 천사의 사역으로서 천사에게는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데서 끝나게 되고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까지는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이 구원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받기 위해서는 율법의 완성자가 오셔서 그 죄를 해결해 주셔야 한다.

 

유대인들 중 육체가 병들지 않았던 이들 역시 율법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이 병들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율법의 중한 것을 어기지 않았을 뿐이다. 율법은 인간이 온전히 지킬 수 없는 법이다. 그 중 하나라도 어기면 모두 어긴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을 주신 것은 그들을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이다.

 

38년 된 병자는 육체가 심하게 병들어서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해도 혼자 내려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때 율법의 완성자인 예수께서 보시고 병이 오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신다. 그는 천사가 물을 동할 때에 자기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고 자기의 고통을 아뢰자 예수께서 그 중심의 간절함을 보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니 곧 나아서 일어나 걸어가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오시게 되면 더 이상 연못이 필요치 않다. 그를 믿고 말씀에 의지해서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아래서 복음으로 넘어오는 상황이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일어난 상황은 이처럼 율법과 복음의 조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이는 율법 아래서의 인간의 한계와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의 구원을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다. 천사가 가끔 나타나 물을 동하게 할 때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만 병이 낫게 되는데 그것도 몸이 심하게 병든 자들은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도 없어서 그나마 병이 나을 가망성이 희박한 자들이었다. 이것은 율법 아래서 구원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오셨을 때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자기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병이 나았다는 것은 율법을 범한 죄를 사함 받았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시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범한 자범죄를 사해주심으로 비로소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게 되고 그 증거로 육체도 나음을 입게 된다. 그리고 후에 그가 죽으심으로 피의 공로로 원죄까지 사함 받고 그 증표로서 성령을 받게 되면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통치하는 수단으로서 자기 백성에게 먼저 법을 주시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엄격한 법규를 주심으로 인간이 율법을 받게 되면 결국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 후에 율법의 완성자인 아들을 보내서 그 율법의 저주에서 풀어주심으로 죄사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복음의 전단계로서 율법과 복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한 마디로 율법이 없으면 복음이 올 수 없다. 율법으로 죄 아래 가두어야 마지막에 아들을 보냈을 때 아들을 믿게 되고 합법적으로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이 구원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몸이 병들지 않았던 자들은 자신이 의로운 줄로 착각하여 아들을 배척해서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지 못해 영생에 이르지 못했다. 율법의 저주는 율법의 완성자가 오시기 전에는 결코 풀어질 수 없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61).

 소경이 모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등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7:22).

 

이 말씀들 속에는 율법의 한계와 그것에 대한 해결자의 역할이 동시에 나타나 있다. 율법 아래 사는 동안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이라서 자기 속에 들어있는 죄로 인해 법을 어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병들고 가난하고 눌린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율법 아래서의 비참한 삶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시게 되면 상황이 돌변하게 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율법의 저주가 풀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죄로 인해 악한 영이 그를 지배하게 되어 고통 가운데 있다가 예수를 믿음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풀리게 됨으로 악한 영이 떠나고 그가 가져왔던 병도 낫게 된다. 이것이 율법을 범한 자범죄가 해결되는 순간이다. 그 후에 예수의 피의 효력으로 성령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다. 이로서 자범죄와 원죄를 모두 해결 받고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구원의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게 되면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이제 겨우 하나님 백성의 신분이 되어 율법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된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의 피의 효력 때문에 성령이 오시게 된다. 예수의 피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다 효력을 미치게 된다. 예수 이름 속에는 마귀를 멸하고 원죄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받게 되면 우리 영이 마귀 발아래서 빠져나오게 된다.

 

성령께서는 우리 영적인 백성인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시게 된다. 이제부터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뜻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율법으로서 이것을 거역하게 되면 성령의 법의 저주로 말미암아 마음속이 병들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는 항상 악한 영이 따라 다닌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게 되면 마귀가 청구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허용해 버리시기 때문에 그때부터 마음이 둔해져서 신앙생활이 안 되고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기도 응답도 안 되며 마음이 병들게 되고 고통을 겪게 된다. 이것이 영적인 귀머거리, 영적인 문둥병자, 영적인 소경 등으로 이러한 마음의 병은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점점 타락으로 가게 된다. 이러한 마음의 병은 세상의학으로 고칠 수 없고 성령의 은사로도 못 고친다.

 

성령의 은사자들은 단지 육신의 병만 고쳐주게 되는데 병 고침은 천사들의 사역이다. 천사들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없기 때문에 병만 고칠 뿐 마음속의 죄까지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앞에도 성령의 법의 완성자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인격적으로 와 계신다. 그를 믿게 되면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를 사해주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병에서 놓임 받게 되고 영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해 주시게 되면 그동안 기독교인들 마음을 지배해서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했던 악한 영들이 나가게 되고 비로소 죄 사함 받은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가 지배하심으로 비로소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성령의 법의 완성이며 이것이 구원이다.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성령의 법을 온전히 지키고 살 사람이 없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격한 성령의 법을 주신 것은 죄 아래 가두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 얻게 하시려는 의도이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의 법의 완성자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만 기독교인들의 마음의 병이 고침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병든 기독교인들에게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낫고자 하는 간절함을 보시고 고쳐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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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나다나엘

등록일
2023-12-01 07:17
조회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