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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들의 이야기

율법의 한계

율법의 한계

요한복음5:1-9

 

본문은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예수께 고침을 받는 부분이다. 삼십팔 년 된 병자는 연못 속에 갈 필요가 없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율법을 범하여 생긴 병에서 놓여나서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가 병을 고치러 오시지 않았다는 것과 이병이 뭣 때문에 왔는지는 14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라고 하는 부분에서 잘 알 수 있다. 율법을 범한 죄를 사해주러 오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본문을 보면서 예수는 병이나 고치러 왔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기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함으로 오늘날도 성령의 은사로 병을 고치면 그것을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천사가 육체의 병만 고쳐주고 마음속의 죄는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 구원이 아니다. 천사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없기 때문이다. 병 고치는 것이나 다른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서 잘 믿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은 법으로 왔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으로서 그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도 성령에 붙들려서 사역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두 가지를 다 갖고 계신다. 피와 살을 다 갖고 계신다. 예수는 율법을 범한 병도 고치고 마음속의 죄까지 해결한다. 하나님 아들한테만 이 권세를 주는 것이다. 예수께서 율법을 어겼던 병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곧 자기를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지금 죄는 사함 받았지만 예수를 팔았던 가룟 유다같이 될 수도 있다 성령까지 받아야만 완벽해지기 때문에 끝까지 나를 사모하고 있다가 성령이 오면 받으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성령을 받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멸망으로 간 것을 볼 때, 이렇게 유대인들은 성령을 받아도 온전치 못하다. 그래서 여름실과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완전히 들어와야만 된다. 그래야 타락하지 않는다. 그때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아래 있었기 때문에 율법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이방인들하고 섞여서 살아야 하고 TV나 핸드폰을 통해서 엄청난 영들이 들어오고 율법처럼 우리에게 제재를 가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판단해서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천사를 통해 고침 받는 것과 예수가 고쳐주는 것을 보면 율법과 복음의 엄청난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율법과 복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겨우 예수는 빵이나 나눠주고 병이나 고친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는 율법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자꾸 표적을 보여줘서 믿게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야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예수 이름만 불러도 된다. 그리고 성령이 오실 때까지 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어야 마귀 죄가 드러나서 심판을 받고 아담 곁을 떠났던 그 하나님이 이제는 각 사람에게 오셔서 영을 지배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병만 고쳤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성령이 와서 죄 없는 그 마음을 사로잡아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령만 받으면 구원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내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고 성령을 못 받았다는 것은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피를 흘림으로 마귀가 심판을 받고 쫓겨났기 때문에 예수 이름만 부르면 성령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다 준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아래 살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면 먼저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그 권세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완성자로 왔기 때문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는 것이며 이것은 합법이다. 율법을 어긴 병은 율법의 완성 자가 와서 해결해 줘야 한다.

 

혈루증 여인이나 여러 병자들이 많은 의원을 찾아가고 있던 것을 다 허비하고 병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못 고친다. 하나님 말씀에는 항상 악한 영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하는 말들은 어차피 죽은 영들끼리라서 죄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 말씀에만 항상 악한 영이 따라 다닌다. 왜냐면 살리는 영이기 때문에 들으면 살고 안 들으면 저주이다. 율법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육체에 법을 줬기 때문에 육체에 병이 든다.

 

그러나 병이 안든 자들,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은 레위기에 나와 있는 법처럼 율법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인데도 다 지켰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병이 들지 않는 이유는 율법의 중한 것만 어기지 않았을 뿐 누구라도 율법은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자기들은 병이 안 들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나는 의롭고 너는 더럽다 이렇게 인간 쪽에서 정의를 내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 예수가 오므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예수가 오기 전에는 이런 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지만 예수가 오고 나서는 병들었던 자들은 살기 위해서 오고 득세하고 있었던 자들은 저주 아래 들어감으로 완전히 뒤집혀버린 것이다. 높아진 자들은 내려가고 낮아진 자들이 높여지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에 이렇게 기록됐지만 자기한테 주어진 것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인간은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알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어둠 속, 사단의 발아래 사는 자들의 삶이다. 그래서 하나님 뜻은 하나님 품속에서 나온 아들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법은 사람 눈만 피하면 되지만 하나님 법은 눈을 피해도 안 되고 뒤에 악한 영이 따라 다닌다. 하나님이 이렇게 안하면 자기 백성을 통솔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악한 영을 허용하면 인간은 꼼짝도 못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면 기도응답도 안 되고 신앙생활도 안 되고 점점 타락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마음의 병이다. 마음의 병은 세상 의학, 과학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와야 해결된다. 성령의 법은 미워만 해도 살인이고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인데, 이런 영적인 율법을 범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버리는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마음의 병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병은 성령을 어긴 것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내력도 말한다. 우유부단, 이기심, 나태함, 게으른 것도 다 병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라고 하듯이 죄 속에 가두어 버리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본문의 삼십팔 년 된 병자는 천사가 와서 어쩌다 한번 고쳐주는 것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에 얼마나 율법아래서의 생활이 힘든지를 말하는 것이고 율법의 한계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누구든지 만나기만 하면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우유부단, 이기심, 나태함, 게으름 등을 불편하게 느껴야 병을 고치려고 한다. 그런데 마음의 병을 불편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고침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예수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어보시는 것이다.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안 왔으면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가를 생각해보면 자기병을 먼저 고침 받고 싶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줘서 육체의 병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가게 하고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줘서 마음의 병을 가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찾아가게 한다. 찾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속에 있는 병을 알아야 하고 고치고 싶어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힘이 드는 이유는 법아래서 신앙생활을 하고 법을 지켜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삼십팔 년 된 중풍병자는 연못 속에 갈 필요가 없고 예수를 믿으면 되고 기독교인들은 손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오면 모든 죄에서 풀어지고 모든 죄에서 자유 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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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마르다

등록일
2023-12-01 07:19
조회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