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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들의 이야기

율법과 성령의 법의 한계

율법과 성령의 법의 한계

요한복음5:1-9

 

본문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이나 병으로 고통을 당하던 환자가 예수를 만나서 낫게 된 경위이다. 베데스다 연못에 가끔씩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할 때, 그 못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낫게 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의 뜻을 좀 더 상세하게 풀어 보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고 살면 천대까지 복을 받지만 만일 어기게 되면 삼사 대까지 이어져 저주가 흐른다. 그래서 율법에 기록한대로 죄악의 경중함에 따라 병도 약하게 드는 질병이 있고 온몸에 심하게 드는 병도 있다(20:1-6).

 

그래서 병을 고쳐보려고 많은 의원을 찾아 돈을 허비해 보지만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생긴 병이라서 사람(의원)으로 해결되지 않는 질병들이 있다. 그때 자신의 잘못을 느끼고 회개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물을 동하게 하여 고쳐주신 모양이다. 이때는 아직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 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천사()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내려오는 천사의 출몰 때 가장 간절히 원하는 자가 그나마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먼저 들어가게 되어 어떠한 병도 낫게 된 것이다.

 

사람이 병을 고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의원의 기술여부에 따라서 고칠 수도 있고 못 고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어떤 병이든지 다 낫게 된다는 뜻은, 그가 율법을 어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낫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38년 된 병자도 연못가에 온 것이다. 그러나 많은 병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거동 못하는 자가 가장 먼저 들어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38년 된 환자가 너무나 긴 시간동안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낫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애가타서 죽을 지경을 만난 것이다.

 

이때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던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그를 보신 것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았다는 뜻은 그의 간절한 심정을 보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 것이다. 여기서도 이 병든 자가 간절하게 애타하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을 때 당신이 뭔데! 의심하고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직은 예수인지 모르나 너무나도 간절하게 낫기를 원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와도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 이었다. 하여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때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병자를 고쳐주심에 있어서 단순히 그를 불쌍히 여겨서만 고쳐주신 것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들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즉 율법과 복음에 대한 뜻을 나타내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를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5:14)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 것은 율법을 어긴 죄를 지적하신 것이다. 이도 엄청난 경험을 하였으니 처음에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게 되면 또다시 율법을 어길 수밖에 없게 되어 더 심한 병이 생길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율법 아래에서는 또다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폐단이 올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끝까지 예수를 의지하고 따라 와서 마지막에 성령까지 받으라고 하시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율법을 범한 자범죄를 사함 받고 난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실 때 끝까지 믿게 되면 그 피의 효력으로 아담이 범죄 한 원죄가 사해진다. 그리고 인간을 지배하고 있던 마귀가 떠나게 되면서 그 자리에 성령이 임하시어 그들의 영을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 하신 말씀이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뜻이다.

 

이처럼 율법아래에서는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 것도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해줄 때를 기다려야 하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또한 설사 그렇게 하여 병이 나았다고 한들 율법을 어겨서 범죄 함으로 인하여 온 질병들이기 때문에 또 다시 율법을 범하게 되면 다음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길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힘들고 답답한 노릇인가? 즉 인간의 본성이 마귀의 사주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율법을 온전하게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아래에서의 고통과 폐단이며 한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말씀을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해 보자! 이방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난다고 하여 구원의 완성으로 착각하고 있다. 은사와 구원은 완전히 다르다. 은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유익을 주기 위하여 나타내는 표적이다(고전12:7).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성령을 거역하지 말고 끝까지 따라서 살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5:16). 성령의 법은 신약성서에 기록되어있는 모든 말씀 들이다. 그러나 처음 성령을 받을 때는 뜨겁게 받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세상과 육신에게 져서 타협하게 되고 끝에 가서는 결국 타락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보다도 오히려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타락으로 치닫게 된 이유는 이들의 마음속을 붙잡아주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성령이 마지막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에 성령을 거역하면 모든 것이 끝이라서 죽음을 면치 못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성령이 마지막 이지만 범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저장 되지 않는 여름실과에 비유하였다(8:1-2). 그 좋은 예가 성령을 받고 난후에 성령을 속이고 죽임을 당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다(5:1-11).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수도 없이 성령을 거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처럼 죽임을 당하지 않고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 피의 공로 때문에 원죄만 사함 받고 마귀가 떠나면서 마귀의 지배권 아래서 하나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 왔다는 뜻이다. 하여 기독교인들은 이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서 살아야 하는 백성신분인 것이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는 항상 천사를 통하여 역사 하셨다. 천사는 아들이 아니고 부리는 종의 신분이다.(1:5-14)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온 후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므로 천사들의 출몰과 현현하는 것은 육안으로는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이 충만하고 은사가 나타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병을 고치고 있으니까 구원을 받은 줄 착각하고 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부리는 영으로서 천사()를 뜻한다. 따라서 천사에게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구원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구원이라 함은 죄를 사함 받는 것과 성령의뜻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온전하게 지켜야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 행위로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서 남의 것을 갖고 싶다는 것과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이미 도둑질과 간음을 한 것이요 미워하는 마음만 먹어도 살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은사가 많이 나타난다고 하여 마음속으로 한 번도 위와 같은 죄를 범하지 않고 성령을 온전하게 따라서 살아가는 자가 얼마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아무리 은사를 많이 받아서 능력을 행한다 할지라도 성령을 온전하게 따라서 살자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은사란? 자기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는 천사를 보내 주셔서 낫게 한 것이다. 이때 은사를 받은 자가 교만하게 되면 은사는 다시 회수를 당하게 된다. 또한 은사로 병 고침을 받는 자는 온전한 것이 아니므로 병이 다시 재발 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법 아래서는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신을 입은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않고 성령을 온전하게 따라서 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아들 예수께서 오시기전에 율법아래서 살던 때와 같은 이치이로서 성령의 법 아래에서의 한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지금하고 있는 행위로서는 진정한 구원이라 할 수가 없고, 성령의법(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는 백성신분 일 뿐이다. 따라서 각각 자기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다시 기독교인들 앞에 오신 것이다(1:21).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를 사해주러 오신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을 어긴 영적인 백성들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처럼 육체에 병이 들지 않고 마음에 병이 들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이방인들이기 때문에 음식을 잘못 먹어서 육체에 병이 들 수 있기 때문에 꼭 죄 때문에 육체에 병이든다고만 할수가 없다따라서 육체의 질병들은 병원에 가서 수술하고 치료받아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은사로도 충분히 병을 낫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을 거역하고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들어온 귀신(영적인 질병)은 은사로서 쫓을 수도 없고 육체를 입은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에서 지은 죄를 율법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율법의 완성 자 예수께서 오셔서 해결해 주었듯이, ‘성령의 법을 어긴 영적인 백성들에게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거역하고 마음에 얻은 질병들을 해결해 줘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질병이란? 즉 영적인 문둥병(자신이 잘못을 하고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각 없는 자)영적인 절름발이와 앉은뱅이(모든 일들을 함에 있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주저앉자 두려워하는 자) 영적인 귀머거리(하나님의 말씀을 육으로 받지 말고 마음과 영으로 받아야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자) 또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자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자 등. 이 모든 것들이 영적인 질병들이다. 이는 성령을 거스리고 지은 죄악들이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천사, )로서는 절대로 고칠 수가 없다. 설령 어쩌다가 고쳤다 할지라도 또다시 성령을 거역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질병은 언제든지 더 무서운 정신병으로도 진행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 된다.

 

이는 율법아래서 38년 된 병자가 율법아래서는 온전하게 해결되지 않고 복음(예수)이 와서 해결해 주어야 하듯이,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법 아래에서는 마음의 질병들을 제대로 치료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도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옛 자아 귀신)을 몰아내주고,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해 줘야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다. 이때 마음의 질병까지도 떠나가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정신이 맑아지게 되면서,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법 아래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벗어나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 복음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하시는 말씀 앞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움직이는 삶을 산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도 완성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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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사라

등록일
2023-12-01 07:2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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