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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여러분도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여러분도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새한중앙교회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 들어오신 분들은 누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여러분 마음속에도 작은 겨자(그리스도)씨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게 됩니다. 이때 자기 마음 밭에 심겨진 겨자(그리스도)씨가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게 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주의사항이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이 신앙생활 하면서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영으로 하신 말씀이라서, 인간 속에서 올라오는 육신의 생각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대하여 불신을 하게 되고, 불신은 '악한 영'으로 하여금 인간의 생각을 틈타고 들어오게 만듭니다. 마귀와 귀신은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못 듣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사사건건 예수에게 시비를 걸고 태클을 걸었던 이유는 육신의 생각으로 예수를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 밭에 떨어진 겨자(말씀)씨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곧바로 말라 죽고 말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씨뿌리는 비유로 4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나 마음이 강퍅하여 말씀이 마음 밭에 떨어지기도 전에 마귀가 말씀을 주워 먹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으나 마음 밭이 돌처럼 단단하여 말씀이 도저히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곧 넘어지고 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걱정과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내려놓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세상 것에 가로 막혀 결실치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으로서 가장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서 점점 자라게 되므로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조금 덜 좋은 마음 밭은 가진 사람은 육십 배의 열매를 맺게 되고, 그 다음으로 덜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육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인간의 머리 위에 머물며 인간의 영(靈)만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은 인간 속에 오셔서 자라거나 성장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자란다고 하면 하나님이 자란다고 하는 말인데, 이는 전혀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성경 어디에도 성령이 자란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그동안 마귀가 인간의 영(靈)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죄 없는 예수를 죽인 마귀가 불법자가 되어 인간에게서 떠나게 되자, 그 자리에 성령이 오셔서 인간의 영(靈)을 다시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이를 혼동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자라시는 분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부활하신 뒤로는 예수도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맨 처음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신 사건이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빛(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들어 가신 일입니다. 바울이 기록한 말씀을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가 계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기록한 글을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나 목사가 쓴 글이라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쓴 글은 모두가 인간의 생각을 기록한 글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하는 말은,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 아니면 인간의 영혼은 살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만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하고 영혼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은 불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해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을 뿐, 불신자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누구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이방인들 앞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이유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 장차 이방인들 앞에 다시 가겠다는 것을 미리 2천 년 전에 예고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죄를 해결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예수의 특성을 따라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를 봐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죽은 자나 다름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는 성령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겨자씨 비유를 통하여 여러분들은 자신이 어떤 유형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사단의 종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하여 사사건건 시비를 걸다가 결국은, 예수를 이단으로 몰아 죽이는데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처럼 사단의 종이 되어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기독교인들도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 하여,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주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말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은 결국 천국의 문 앞에서 넘어지고 말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육체에 주신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모두가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자신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부정적인 생각만 들게 됩니다. 악한 영들은 인간의 생각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못 듣게 만듭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무리 예수께서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어도 자신의 교만함 때문에 알아 듣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만 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지 못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높아져 교만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을 비추어 주실 빛(그리스도)이 아직 이방인들 앞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제대로 깨달으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면 악한 영의 사주를 받아 교만한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어김없이 교만한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곧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자기 마음속에도 예수가 계신 줄 착각하고 있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자라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이에 따라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성령은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 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모두가 바로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교회마다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서 살던 사람들이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아도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합니다. 인간의 죄악을 먹고 사는 영적인 존재를 '죽은 영'이라 부르는데, 죽은 영은 생명이 없는 귀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귀신들이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여 각 사람들 마음을 이간질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존재가 교인들을 갈라 놓고, 교단을 갈라 놓고, 교회를 갈라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부부사이를 갈라 놓고, 부모 자식 사이를 갈라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은 영의 이간질로 갈라진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간질 시키는 '죽은 영(귀신)'을 몰아내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제 곧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께서 알곡으로 인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고 믿는 자들은 망설이지 말고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와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시기도 전에 적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들이 자신이 재림 예수라며 뭇 영혼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단에게 끌려 가는 자들 대부분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위엣것을 찾다가 미혹당해서 끌려 가는 자들입니다. 성경에도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거짓 영을 받은 자들이 먼저 설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인 줄 몰랐으나,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또한 아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이라,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게 되면 인간은 누구나 교만한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런 자들이 교회에서 감투를 쓰고 교인들에게 생명이 없는 죽은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 모두가 구원 받은 줄 착각하여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사단에게 자기 영혼을 파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생명이 없는 죽은 소리로 유대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유대 백성들로서는 당연히 율법을 지키면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입니다성경에 율법은 한 가지만 어겨도 모든 법을 어기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 몇 가지를 지킨 것을 가지고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굳이 예수를 믿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유대 백성들을 배나 지옥 자식 만들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도 이를 두고 배나 지옥 자식 만들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도 성령(마음속에 주신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데, 성령을 따라 살지도 못해 놓고 구원이라고 믿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교만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교만한 자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또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모두가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죄악(미움, 시기, 질투, 분노, 거짓, 음란, 탐심)이 가득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독한 창질하는 것이 들어 있는 자는 남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남을 가르치게 되면, 도리어 교인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함부로 선생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잘못 가르치게 되면(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잘못 가르치게 되면), 그 밑에 있는 교인들을 배나 지옥 자식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을 가르치게 되면 '죽은 영'의 가르침을 따라 교인들을 모두 지옥 자식 만들고 맙니다.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이라도 그가 하신 말씀은 인간의 영과 혼과 관절을 찔러 쪼개기까지 인간의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죄까지 모조리 찾아냅니다. 그래서 믿는 자라도 진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듣게 되면 인간은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오시면 좋을 것 같지만 실지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 불처럼 뜨겁게 오셔서 하나님의 대적자 마귀를 멸하여 주시지만, 그리스도는 빛으로 오셔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귀신'을 멸하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죄악들을 낱낱이 찾아 지적 하기 때문에, 죄악을 지적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사실은 죄를 지적 받으니까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죽은 영(귀신)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주인이 '죽은 영'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리스도께서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오셔서 날마다 여러분들의 죄악을 지적하게 되면, 어느 누가 그를 좋아 하겠습니까?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 번이지 날마다 여러분들의 죄악을 지적한다면 누가 그를 좋아하며 따르겠습니까?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교회 목사가 여러분의 치부(죄악)을 날마다 들추어 내서 핀잔을 준다면 여러분들은 기분 좋겠습니까? 아마 기분 나쁘다며 당장 교회를 그만 두고 떠날 것입니다. 그런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들을 낱낱히 밝혀 냅니다. 그러니 누가 그를 좋아 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교인들에게 달콤한 말을 쏟아내고 있는 자들은, 사단의 종이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자들은 교인들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기독교 목사들로서는 예수님처럼 교인들의 죄악을 지적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죄악도 벗지 못한 자가 어찌 교인들의 죄악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교인들의 죄악을 지적하려면, 바울처럼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자신부터 주님으로부터 죄악을 탕감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인들의 죄악을 지적하려면 교인들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목사들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대신 '죽은 영'이 주인으로 들어 앉아 있다 보니, 교인들의 죄악을 전혀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잘못을 알아도 그것을 지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권세는 오직 당신의 아들에게만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는 자는 인간의 죄 또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악한 영'이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교인들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이것이 바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사람을 통해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세운 사람(목사)을 통해서 교인들의 죄악을 날마다 지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날마다 죄악을 지적하게 되면, 인간으로서는 당장은 듣기 싫고 기분 나쁘지만,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게 되면 결국은 '죽은 영'이 빛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를 싫어했습니까? 자신들의 죄악을 지적하니까 싫어했던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독교인들의 죄악을 날마다 지적하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그리스도를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를 두고 찌르는 반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부딪히는 돌로 표현했던 것은 바리새인들과 사사건건 부딪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은 맨날 성도들에게 구원 받았다고 하는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인간의 영혼을 좀먹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직도 자기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한데, 맨날 구원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면 당장은 좋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영혼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는 살아 생전에 반드시 해결 받고 죽어야 합니다. 죽은 후에는 오직 하나님 심판만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섰다는 말은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거짓 목사와 삯꾼 목사들의 구원 받았다는 달콤한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미 그 증거들을 우리들에게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은 본래는 바리새인었으나,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 유대인들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하고 다니자,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식음을 전패하며 바울을 쫓아다녔던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중에서 어떤 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날마다 지적하고 다니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그를 이단의 괴수라며 당장 죽이려 들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어둠()속에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의 한계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약 2천 년 전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 마음속에 천국의 씨를 뿌렸습니다. 2천년이 지나자 이제 이방인들도 결실의 때가 되어 그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것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천국이 자라야 하는데, 천국이 자라지 않고 도리어 가라지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라지는 악한 영(귀신)들이 심어 놓은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이 가라지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독교인들도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가라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가라지가 자라서 나중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자부하던 바리새인들도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대적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령을 거역한 죄가 가장 무서운 죄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한 죄가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은,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죽어라고 신앙생활 했던 것들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날려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김을 매줍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알곡들을 수확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가라지와 알곡들이 함께 자랄 때는 그냥 놓아둡니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잘못 뽑을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 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나올 때 쯤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그때 가라지와 쭉정이는 거둬서 불속에 던져 넣습니다. 그러나 알곡들은 농부의 손을 거친 후에 주인의 곡간에 들어가게 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독교인들 중에서 자신을 믿는 자들을 알곡으로, 그리고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쭉정이로 구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 마지막 날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여 땅에서 알곡으로 인()친 자들은 먼저 하늘로 불러 올라가게 되고, 쭉정이는 땅에 버려지게 되어 마귀와 함께 타는 유황 불못 속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서 구원 받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선민들이었지만, 그들 모두가 천국에 들어갔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 중에서 오직 예수를 믿고 나오는 자들만 죄 사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역시 불신자들 가운데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자들만 하나님 백성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도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은 자들만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으면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는 초청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갈 수 있는 초청장을 받았다고 하여 무조건 천국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청을 받은 자들이라도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범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반드시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해결 받아야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체험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의 법아래서 살 때는 자신이 지금까지 누구의 하수인으로 살았던 가를 모르고 살았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자신이 비로소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았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중에 괴수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평생을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좋은 예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 살 때는, 자신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에게 온갖 자기 뜻을 들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기도를 안 들어 주면 왜 내 기도는 안 들어 주느냐며 하나님 앞에 땡깡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자기 틀 안에 가두어 놓고 자기 뜻을 들어 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모두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 아닙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 출세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사단이 지배하는 곳이요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의 추한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 목사들도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교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걸 가르치지 않으면 교인들이 교회로 오지 않기 때문에, 목사들도 교인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축복받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이라면, 교인들에게 결코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단 한번도 자신의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출세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빵이나 나눠주는 자로 오해하지 않도록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정반대의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교인들에게 절대 세상에서 축복 받으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 거듭난자는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 뜻을 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원대로 이루어 가실 것을 기도합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 앞에 그렇게 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죽어 가는 이웃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며 자신을 의롭게 여기던 자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자신이 율법으로 의롭게 된 줄 알았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자신이 비로소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짓만 하고 살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기독교인들도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인생이 180도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 살아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빛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빛을 비춰 주어야, 어둠속에 사는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원리에 따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만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빠져 교만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비추어 주시는 빛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자입니다.

 

(참고1)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받은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에게 임할 때는 불처럼 뜨겁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불로 나타납니다.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불로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불타고 있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도 불이 내려와 돌 판에 십계명을 새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850명과 내기를 할 때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올린 번재를 불태웠습니다. 만약 이런 불이 인간의 마음속에 임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모두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맙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소달구지에 실려 돌아오자, 기쁜 나머지 무심코 법궤를 들여다보았다가 그 자리에서 오만 칠십 명이 죽고 말았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예수를 보내주신 것이고,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런 원리에 따라 하나님 영인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성령이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지금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가 사라지고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미움, 시기, 질투, 거짓, 분노, 욕심, 음란 등등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바로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오신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오직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합니다.

 

(참고2) 성령과 달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오십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없었으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 하신 후, 그리스도 영이 되였기 때문에 이제는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분이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의()가 하늘을 찔렀지만, 빛 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시자, 비로소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자신의 마음속을 비추어 주셔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만 받아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그때는 바울처럼 모두가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이나 교회에서 높은 감투를 쓰고 있다고 해서 축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축복은 바로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알고 있느냐에 따라 축복의 척도가 달라집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 아래 태어나서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오늘날 자신이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잘했더라도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인간은 제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부자라도 온갖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율법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야 하는데,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가르치는 거짓목사들의 말에 세뇌되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더러운 죄악들이 가득합니다. 예수께서도 인간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 마태복음 15:19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다보니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 아래서는 죄인이라고 고백해봐야 겨우 자신이 육신으로 지은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자가 없기 때문에, 바울과 같이 마음 중심에서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자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서는 겉모습은 약간 바뀔 수 있어도, 속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성령은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도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법(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만들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바울처럼 속사람이 바뀌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속사람이 거듭나야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따라 살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어느 누구도 율법을 따라 사는 자가 없습니다. 유대인들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던 악한 영의 방해 때문에 그들도 율법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을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귀신(악한 영)들을 불러내어 쫓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구원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사는 자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죽은 영)이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악한 영)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기독교인들도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게 되면 놀랍게도, 그동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방해 했던 "악한 영"들이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말씀이요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 목사들은 아직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목사들 중에 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성도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죄 문제는 천사들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 중에 성령의 은사를 열 가지 넘게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라도, 교인들의 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죄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 문제는 오직 하나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 주었다 해도 또다시 귀신이 찾아오고 병이 재발 되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똥()을 완전히 치우지 않았기 때문에 병이 재발되는 것입니다. 똥을 치우지 않으면 똥파리가 계속해서 날아들 듯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악한 영(귀신)들은 계속해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찾아오게 됩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와 더불어 악한 영(똥파리)이 떠나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죄에서 구원 받는 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찬식 때 빵과 포도주를 아무리 많이 먹고 마셔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찬식 때마다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는 장차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입니다. 빵과 포도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 하고 있는 신앙생활 자체가 모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하는 신앙생활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실 때,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되면, 육신의 생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므로 도리어 자신의 마음속에서 가라지가 자라게 됩니다. 이는 곧 자신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두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않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판단하고 정죄하다가 도리어 멸망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장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는 기독교인 모두가 악한 영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죄 문제를 책임지십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문제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책임지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라, 이 세상 누구도 이를 변개할 수 없습니다.

 

(참고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두 아들 중에서 장자인 이스마엘을 버리고, 둘째인 이삭을 택하였던 것은, 장차 이스라엘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아브라함의 순수한 혈통에서 태어난 자손들이지만, 이스라엘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육신에 속한 자녀로서 마지막에는 이스마엘처럼 버림받게 될 것은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중에서 오직 예수를 믿고 나오는 자들만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보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백성이라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스마엘처럼 하나님 자녀로 택함을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고4) 이삭의 두 아들 중에서 장자인 에서를 버리고, 둘째인 야곱을 택하였던 것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이방인들 중에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 받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은 육신에 속한 자녀로서 마지막에는 에서처럼 버림받게 될 것을 미리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자들만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영적인 백성이라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믿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에서처럼 버림받게 될 것을 성경은 이미 4천년 전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고5)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성경에 유대인들 앞에 보낼 메시아와 이방인들 앞에 보낼 메시아를 각각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들로 이스마엘과 이삭이 등장하고, 이삭의 아들로 에서와 야곱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의 구원까지 모두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 같았으면 굳이 이삭의 아들로 야곱을 등장시킬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들의 구원이 각각 다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예수를 보내서 유대인의 죄 문제를 해결토록 하셨고, 이방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기독교인의 죄 문제를 해결토록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장차 이루어지게 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이유 없이 기록된 글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독교인들은 이 사실 또한 믿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좋아하게 되면, 누가 가장 좋아하게 될까요? 당연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이 가장 좋아하게 됩니다. 이단들이 달리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아직도 인간의 마음속에 죄가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순간! 귀신은 자신을 예수로 둔갑시킵니다. 그리고는 구원 받았다고 믿는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짜 예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가짜 예수는 인간들끼리 평화롭게 살자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굵직굵직한 이단들이 만국 평화회의니 뭐니하면서 잠실 운동장 같은 곳을 빌려 큰 축제를 열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화평하라고 말씀하시니까 그걸 가짜 예수가 육신으로 해석하여 인간들끼리 평화롭게 살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합니다. 이런 죄악을 마음속에 잔뜩 품은 상태에서는 인간에게 평화가 찾아올 수 없습니다. 설사, 평화가 찾아온다 해도 그 평화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가짜 평화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가 화평이 아니라 먼저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예수(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화평 대신 검이 먼저 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서로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부터 들추어 내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아버지와 아들간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화평이 찾아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오늘날 거짓 예수가 이 땅에 얼마나 많이 나타나서 영혼들을 미혹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이제는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오직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합니다. 기성 교인들마저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교만해진 인간의 마음을 "악한 영"이 붙잡고 자신을 보혜사 성령이니 뭐니 하면서 인간들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악한 영으로 하여금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는 순간! 그들 또한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교만해진 그들이 결국 누구의 하수인 노릇을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은 기독교인 모두를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두신 다음,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르고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좋아하니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악한 영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을 예수로 둔갑하여 기독교인들에게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유대인들에게도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리새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구원 받았다는 말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죄악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구원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는 모두 예수로 둔갑한 거짓 영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거짓 영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는 혈과 육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인간은 죽어서도 영원히 고통(지옥)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그들을 마음속에서 쫓아내야만 진정한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온갖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다가 악한 영과 함께 지옥불에 던져지고 말게 됩니다.

 

오늘날 제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옛 구습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고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가 토한 것을 도로 주워먹고, 돼지가 자기가 싼 똥위에 가서 도로 눕듯이, 기독교인들 역시 똑같은 죄를 날마다 반복해서 짓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이 해결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한, 인간은 근심과 걱정속에서 절대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한때는 유명한 부흥 강사로 이름을 떨치던 큰 교회 목회라도 말년에 가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도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해결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근심과 걱정을 떨쳐내고 마음속에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실 분이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인간은 진정한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전정으로 평안은 얻은 자가 바로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려면, 먼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죽은 영)들을 제압해야 됩니다. 악한 영들을 제압하지 않으면 어둠속에 사는 영혼들 또한 구해내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도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게 되리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먼저 인간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제압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악한 영들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만 부여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일을 하시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습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됩니다.

 

-천국은 사모하는 자가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까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생각이 모두 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지금까지 읽은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하여 귀에 거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를 사모하던 분들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혹시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분들은, ! 이런 말씀도 있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시면 됩니다. 그 결과는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분들은, 홈페이지에 있는 말씀을 계속해서 읽고 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글을 읽다보면 자신의 생각과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궁금한 것이 생깁니다. 그때는 지체하지 말고 전화나 메일로 물어보십시요?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 주님께서 답변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궁금증이 풀리게 되면, 바로 그때 여러분 마음속에 그리스도 영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는,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 불로 임하기 때문에 뜨겁게 느끼지만, 그리스도는 작은 겨자씨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갓 시집온 새댁이 처음 임신을 하게 되면 잘 모르고 지내듯이, 그리스도 역시 인간의 마음속에 작은 겨자씨로 오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아기가 뱃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것이 느껴지듯이, 그리스도 역시 여러분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것이 느껴지게 됩니다.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처음 3개월 동안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먹는 음식도 산모와 아기에게 해로운 음식은 멀리하고 이로운 음식만 먹어야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겨자씨로 오신 그리스도가 마음 밭에 떨어지게 되면 처음 3개월 동안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먹는 음식도 해로운 것은 멀리하고 이로운 것만 먹어야 하는데, 이로운 음식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만약 세상이 주는 음식을 먹게 되면, 독초를 먹게 되므로 겨자씨가 자라지 못하고 유산되고 맙니다.

 

새댁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기뻐하며, 온 가족들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다니듯이, 여러분도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계신 것을 알았거든, 가족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다니다 보면, 본의 아니게 핍박도 받고, 손가락질도 당하고, 이단 소리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을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속에 계신 주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15:18). 이로서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사실이 더욱더 분명해 집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어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것 같았으면 무엇 하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겠습니까? 성령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절대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 예수 앞으로 달려 나왔을 때,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 것입니다. 신앙 문제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남에게 말하기 곤란한 문제라도 주님 앞에 고백하게 되면, 주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전화와 메일로 연락을 주십시요.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 드릴 것입니다.


                                                                                                      이메일:ksk6307@naver.com 

                                                                                                    연락처: 010-4724-6307(김석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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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2-18 16:07
조회
567

댓글 1

bansuk
2024-01-06 08:35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려면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착각하여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성령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 결코 동일한 영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성령이요 아들은 예수의 영입니다. 이에 따라 아버지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하나님 법을 주시고, 아들은 하나님 법을 어긴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합니다.

성령과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 이렇게 각각 다른데 어찌 이를 동일한 영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이는 악한 영들이 기독교인들의 구원을 방해하기 위하여 교묘히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마십시요. 이는 마치, 바리새파 선생들이 유대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가르치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