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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특별말씀)

설날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

본문: 마태복음24:32-51

제목: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24:37-39).

 

하나님의 역사는 아담에서 노아까지 2000,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2000, 사도 바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까지 2000, 새 하늘과 새 땅에서 1000, 7000년의 역사로 귀결된다. 아담에서 노아까지를 하나님의 초창기 역사로,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를 이스라엘 역사로, 그리고 사도 바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까지를 기독교 역사로, 그리고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는 부활 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을 보면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역사는 아주 짧게 기록한 반면,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는 아주 길게 다루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이 구약과 신약 성경 속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구약이 유대인들에게 율법역할을 하고 있다면, 신약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신약 성경은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2천 년을 살다가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 아래서 2천 년을 살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만약 유대인들에게는 율법 아래서 2천 년을 살게 하신 후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너무나 불공평한 분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기에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에게 똑같이 율법 아래서 각각 2천 년씩 살게 하신 후 마지막에 보내주신 아들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오늘날 하나님 법도 없이 살아가던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이에 따라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성령의 뜻(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끝에 가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영적인 율법 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세상 역사와 다르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과 끝이 언제나 동일하다. 가령,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나야 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끝나야 한다. 그래야 시작과 끝이 동일하게 끝나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시작은 여호와로 시작하지만 끝에 가서는 육신으로 마치고 말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동일하지 못하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끝에 가서는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 이유는 시작은 성령으로 하였지만 끝은 육신의 생각으로 마치고 마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에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셨다.


초창기 때의 2000년 역사!

 

하나님의 초창기 역사는 악이 관영하지 않던 때라 인간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도 선한 마음을 가진 자와 함께하셨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최초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인은 농사짓는 자로서 땅에서 나는 소산물로 예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로서 양의 첫 새끼를 예물로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물은 열납하지 않은 반면 아벨의 제물은 열납 하였다.

 

하나님이 가인의 예물을 열납하지 않은 것은, 가인이 드린 예물에 마음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열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벨은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예물은 열납하셨다. 이때 가인은 자신의 예물이 열납되지 않은 것에 악심을 품고 동생을 때려 죽인다. 동생이 사라지고 나면 자기 혼자 남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예물을 받아주실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예물은 끝까지 열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죽은 아벨 대신 셋을 주어 선한 자의 계보를 잇게 하셨다.

 

이때는 악인(惡人)과 선인(善人)이 혈통을 따라 계보를 이어가던 때라, 가인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가 악한 자로 태어나게 되었고, 셋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가 선한 자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혈통을 따라 악인과 선인의 계보를 이어가던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선과 악이 뒤섞이게 되어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1-3).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좋아했다는 말은, 하나님 영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영이 함께 하지 아니한 사람의 딸들을 보고 좋아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뒤섞여 구분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 영이 인간에게서 영원히 떠나게 된다. 하나님 영이 인간에게서 떠났다는 말은 ,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었다는 말이다. 그 후 인간은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악이 관영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 지음을 한탄하사 모든 인간을 지면에서 물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시고, 당대의 의인이던 노아에게 나타나 방주 지을 것을 명령하신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다. 방주를 짓던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곧 홍수가 나서 모두가 죽게 될 터이니, 방주 짓는 일에 함께 동참하여 가족들 모두가 함께 방주에  타기를 권면 해보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 듣는 자가 없다.

 

수십 년 동안 방주만 짓고 있는 노아에게 도리어 미쳤다며 손가락질하는 자들 뿐이다. 그 후 홍수가 나서 모든 사람이 죽고 겨우 노아 가족 8명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 이런 일은 노아 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 앞에 예수가 오셨을 때도 믿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노아의 때를 비유로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하나님의 초창기 2000년 역사는 노아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스라엘의 2000년 역사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2000년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마엘과 이삭이 태어나지만,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녀요. 이삭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자녀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주신 자를 믿는 자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후 이스마엘 후손들은 땅에 속한 자가 되어 육신의 자녀로 살게 되었고, 이삭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로서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삭의 자손으로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 뱃속에서 쌍둥이로 잉태되었을 때,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을 말씀하신다. 이 말은 곧 4천 년 후 이방인들 앞에 보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은 야곱의 예표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에서의 후손들은 땅에 속한 자가 되어 육신의 자녀로 살게 되었고, 야곱의 후손들이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 이스라엘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 이전 시대 마냥 아브라함의 믿음이 혈통을 따라 자신들에게 그대로 전해 줄 알았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혍통에서 태어난 자손이면 무조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시대부터는 믿음이 혈통을 따라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를 믿는 자가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다.

 

참고로 하나님께서는 장차 되어질 일들을 반드시 미리 예표로 보여주신 후, 그것들을 나중에 당신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거짓 선지지와 거짓 목사들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가령, 자신이 하나님이나 혹은 예수로부터 보냄을 받고 온 자라면 반드시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그는 거짓 목사요 적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들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자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이스라엘 땅에 오실 예수를 예표하고 있다면, 이삭의 아들 야곱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이삭의 예표로 유대인들 앞에 오신 예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셔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해주셨다. 마찬가지로 야곱의 예표로 이방인들 앞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영적인 율법의 완성자로 오셔서,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성취해 나가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로서 우리는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들어 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율법 아래서 2000년을 살게 하셨다. 하지만,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라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율법 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율법 아래 갇힌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대교 2000년 역사 마지막에 이삭의 예표로 예수를 보내서, 율법 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을 구원해 주시도록 하였다. 이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유대인들은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고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보내주신 목적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들이 아무리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손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자가 될 수 없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은 하나님이 보내준 아들(예수)을 믿지 안했기 때문에,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와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하여 모두가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게 된다.

 

그들에게는 오늘 본문 말씀처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던 것처럼당시 예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23:37). 그들은 끝까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인자의 임함도 노아 때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율법을 거역하여 육체가 병든 자들과 자기 동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세리와 창기들이 예수를 찾아와 믿었다. 당시 누구든지 예수께 나아오는 자들은 모든 질병을 고침 받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예수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에, 율법을 거역하여 생긴 질병들은 모두 치료해 주셨다. 병든 몸을 치료 받은 자들은 육체의 질병만 치료받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까지 모두 탕감받을 수 있었다.

 

예수를 믿고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탕감받은 유대인들은, 그 후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아담이 지은 원죄까지 해결 받게 된다. 원죄를 해결 받게 되면 그 증거로 마지막에 성령을 받게 되는데, 유대인들은 이것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한 이스라엘 2000년 역사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었던 자들을 구원하고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았던 자들은 아담이 지은 원죄와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를 해결 받지 못하여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았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않으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신약 성경은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기독교의 2000년 역사!

 

초대교회로부터 출발한 기독교의 2000년 역사는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바울은 바리새파 출신으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율법에 능통하고 로마 시민권까지 가진 자다. 율법에 얼마나 열심을 내던 자인지 도리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잡아다 옥에 가두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 투표를 통해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런 자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첫 번째 이유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해서 성령을 받게 한 후,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삼기 위해서다. 그래야 지구상에 하나님 백성이 편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기독교 2000년 역사 마지막에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가겠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미리 예고를 하신 후에 그 일을 나중에 이루어 가시듯이, 예수 역시 장차 되어질 일을 미리 바울을 통해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회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던 사건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꿈이나 환상을 통해 예수를 보았다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 사울이 예수를 만났던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가 빛()으로 사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신 사건이다.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에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부활하신 후로는 예수도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 역시 바울처럼 직접 그리스도가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신 후 오시게 된다. 그래야 이방인들과 소통하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의 밝은 빛을 보고 눈이 멀게 되자, 예수께서는 사울에게 다메섹으로 내려가 아나니아를 찾아가라고 알려주신다. 당시 아나니아는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500문도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성령이 충만한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자, 사울 눈에서 비닐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곧 눈을 뜨게 되었다. 이때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바울은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은 상태에서 사역하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으면, 예수께서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먼저 사해주신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받게 된다. 이때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마지막에 성령을 받으면, 유대인들은 이것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바울 역시 유대인이라 이런 절차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졌다. 부활하신 예수가 먼저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서 바울의 자범죄를 해결해 주신다. 그런 후 마지막에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는다. 이로써 바울의 영()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바울의 마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구원 과정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반대로 성령을 먼저 받게 된다. 그런 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중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된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구원 과정이 다른 점이다.

 

바울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바울이 하는 말은 곧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이방인이라도 바울이 전하는 말을 듣고 믿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원죄자범죄를 해결하고 구원에 이르게 해주신다. 그렇게 사역하던 바울이 AD65년경에 목 베임을 당하고 죽게 된다. 바울의 죽음이 애석하기는 하지만, 바울의 사역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바울의 죽음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역 또한 막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바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바울이 죽었더라도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을 통해 예수 이름은 계속해서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은 누구나 성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이방인들이 부르는 예수 이름 속에는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은혜가 들어있어서,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게 되면 그 증거로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게 된다. 성령을 먼저 받지 않으면 이방인들은 신앙생활 자체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먼저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 피를 마시고 성령을 받았더라도,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죄는 성령을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속에 오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오직 이방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결 받을 수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을 쫓아내고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사도 바울처럼 성령과 더불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셨더라면, 이방인들도 각자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고 모두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성령만 받은 상태에서 예수 이름을 전하다 보니까 이방인들이 예수 피를 마시고 성령을 받게 하여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은 하고 있지만, 정작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까지는 해결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들어 나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뜻대로 살 것을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신약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경우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성령의 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 살려고 보니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자꾸만 방해를 하여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가령, 예수께서 남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속에서 미움이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고 했으면 탐내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속에서 탐심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런 죄악(미움, 시기, 질투, 음란, 분노, 거짓)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가득하다 보니 누구도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2000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미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을 앞에 다시 가겠다는 것을 미리 예고해 주신 후 다시 오신 것이다. 이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고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령으로 구원받았는데 왜 또다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성령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으라고 성령을 주신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믿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인들에게 애타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귀를 닫고 듣지 않는 것이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노아 때와 마찬가지로 누구도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치,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이 똑같이 재현 되고 있다. 이를 두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인자의 임함도 노아 때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바울로 시작한 기독교 2000년 역사가 끝나고,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앞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자들과 자신을 하나님 자녀로 여기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중에도 성령을 거역하여 마음이 병든 자들과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자들과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과 성령에 붙들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오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알곡으로 인()치고 나면, 세상 마지막 날 공중에 재림하신 예수께서 땅에서 알곡으로 인()친 자들을 공중으로 불러 올려가게 될 것이다. 그때 땅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과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자들과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자들이 남게 되는데,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않은 형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불비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는 불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깨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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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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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6 05:35
조회
525

댓글 2

bansuk
2024-02-12 09:01
홈폐이지 참그리스도인의 키테고리에 들어가면 동영상 말씀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트브에 들어가서 새한중앙교회 청지기를 클릭하면 거기서도 동영상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bansuk
2024-02-10 05:40
설날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시작과 끝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시작은 성령으로 시작하지만, 끝은 누구나 육체로 마치고 맙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이대로 죽으면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았느냐? 해결 받지 못했느냐를 심판 받게 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은 자는 천국으로 가게 되겠지만, 해결 받지 못한 자는 지옥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어도, 자신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는 자들은 노아 때처럼 귀담아 듣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