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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복음20:19-23)

제목: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

 

오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상 모든 교회가 부활절을 기념하고 있다. 부활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거행하는 행사가 성찬식이다. 성찬식 때 먹는 빵은 예수 살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예수 피를 의미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기독교인들은 이런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장차 다시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이라서 아무리 많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도말 되지 않는다.

 

유대인들 역시 예수가 오시기 전까지는 모든 절기와 규례를 지키며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지키던 절기와 제사 역시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는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가 오신 뒤로는 모든 절기와 제사 드리는 것을 그치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 역시 예수를 믿지 않고 계속해서 절기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고집하였다


예수를 부인하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절기와 규례를 지키며 메시아가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가끔 TV에 나오는 유대인들을 보면 통곡의 벽에 대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지금도 메시아가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또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성찬식 때마다 빵과 포도주는 먹고 마시며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만 드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깨닫지 못하면 우매한 인간들은 어리석음 빠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 아래서 신앙생활 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역시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주일날 예배당에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는 장차 다시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따라서 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 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또한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않으면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불신자로 살던 자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신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성령의 뜻(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만약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외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매주 예배당에 나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자신이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인이라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주실 메시아(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영적인 하나님 백성들이라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모두가 무조건 공중에 재림할 예수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만약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가 공중에 재림하시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들림 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인 누구도 들림 받을 수 없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 말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설사 공중에 재림하신 예수께서 기독교인들을 불러도 죄 때문에 주님 음성을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신 자는 주님의 음성을 정확히 들을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주님의 음성이 천둥 번개 치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다. 영은 육체를 입어야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득불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다. 이 땅에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해 주시고, 죄인을 알곡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신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먼저 오셔서 알곡으로 만드는 작업이 끝나면, 그때야 비로소 공중에 재림하신 예수께서 땅에 있는 알곡들을 공중으로 불러 올라가게 된다. 그때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은 이론으로 아는 것일 뿐, 자신이 직접 예수 부활을 목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에 힘이 없다. 좋은 예로 서울을 직접 가보고 말을 하는 자와 서울을 직접 가보지 않고 말을 하는 자는 분명 차이가 많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 상태에서 예수 부활을 말하는 것과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 부활을 말하는 것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권세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거짓을 말하게 되면 자기 양심과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즉시 귀신의 지배를 당하고 말게 된다.  


바울이 기록한 글을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바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시게 되면 인간의 죄를 사해 주시는 권세가 따르게 된다. 오늘날 유명한 신학자와 목사들이 많은 책을 펴내고 있지만그들이 펴낸 책을 아무리 읽어도 어떤 권세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어떤 권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말은,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 대신 '죽은 영'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증거할 수가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 누구도 바울처럼 예수 부활을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예수 부활은 성경을 통해 이론으로 알고 있는 전부이다. 이는 예수 부활을 부인하자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바울처럼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말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이 예수 부활을 말하게 되면, 예수로 둔갑한 귀신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즉시 사로잡아 버리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서울을 가보지도 않고 말을 하면 당장은 사람들이 그 말을 곧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양심과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자기 양심을 속이게 되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귀신)'이 단번에 그 사람을 자기 하수인 삼아 버린다. 그리고 자기 양심을 속이고 말을 하는 자는 말에 힘이 없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어떤 권세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 보니, 기독교인들의 속 사람이 지금까지도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거하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반드시 자기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을 의롭게 여기던 자였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시자,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이 죄인이 되었다는 말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귀신)'이 떠나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려면 바울처럼 반드시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확실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 영인 성령이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면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때문에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게 된다.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도 없고 직접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죄인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말씀대로 살 수 없었던 이유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죽은 영)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말씀대로 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하나님과 가로 막힌 죄악을 담을 허물어 주시면,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죄 아래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에 불과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면 기독교인들 또한 바울처럼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만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 뜨겁게 불로 임하지만, 그리스도는 성령과 달리 빛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누구나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령의 법아래 살 때는 성령으로 구원받은 줄 알았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고 나면 비로소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자가 바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거할 수 있는 자이다.

 

기독교인들 말대로 만약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그래서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다면, 오늘 같은 부활절에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일도 진즉에 그쳤어야 한다. 그런데 해마다 기독교인들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고 있는 것을 보니까, 성령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예수께서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그리스도 모형으로 주신 빵과 포도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오던 종교적인 행위도 모두 그쳤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더 이상 예배당에 나가 예배 드릴 필요도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계시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가로 막힌 죄악의 담을 허물고 자신을 하나님 앞으로 직접 인도하시기 때문에 굳이 사람 손으로 지은 유형 교회에 나가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이에 따라 성령을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 때마다 꼬박꼬박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는 증거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다시 오실 때까지 기독교인들은 종교적인 행위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가 오실 때까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던 것과 똑같은 행위를 기독교인들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짐승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짐승은 예수 모형에 불과하기 때문에 짐승을 대신할 온전한 제물(예수)을 보내 달라는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이 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지 그 이유도 모른 체 제사를 드리다 보니, 정작 짐승을 대신할 온전한 제물로 예수가 오셨지만, 그들은 도무지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다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 앞에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예수 이름을 대신할 진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 달라는 의미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속 사람을 변화 시켜 줄 진짜 구세주(그리스도)를 보내 달라는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들이 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모른 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보니, 정작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셨지만 기독교인들이 믿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령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니까 천국은 따 놓은 당상처럼 말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말은,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말과 같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사단은 당신을 자기 하수인으로 삼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짐승의 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 그것으로 유대인들의 죄가 도말 될 것 같았으면 굳이 예수가 오실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 될 것 같았으면 굳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2천 년 동안 제사를 드렸어도 유대인들의 죄가 도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가 오셨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2천 년 동안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 되지 않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한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을 모조리 쫓아내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셔야 진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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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4-03-3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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