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믿음과 종교적 행위!

믿음은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적 행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종교적 행위라고 말한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종교적 행위는 마음으로 믿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정도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육신으로 가능한 일이다. 믿음은 법보다 앞서는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법으로 하는 신앙생활처럼 거추장스럽지가 않다. 그러나 법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이것저것 격식을 갖추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많은 붙어있다. 따라서 믿음은 일편단심 변함이 없지만, 법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기분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가 누리는 축복이고, 종교적 행위는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저주아래 있는 삶이다. 믿음은 자신을 죄인으로 꺾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믿는 것이며, 종교적 행위는 자신을 죄인으로 꺾지 않고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있는 신앙생활이다.


믿음을 우리가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보자! 한창 혈기 왕성한 처녀총각이 연애를 하고 있는데 둘이 하루만 못 봐도 죽고도 못사는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고 하자! 그토록 둘이 죽도록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미 그들 눈에는 우리말로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콩깍지가 씌운 그들 눈에 얼굴이 곰보인들 어떠하겠으며 입술이 갈라진 째보(언챙이)면 어떠하겠는가? 사랑이라는 불꽃 때문에 허접한 주변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육신적인 사랑도 눈이 멀게 되면 이정도로 인간의 모든 허물 덮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여야 한다.


솔로몬의 아가서를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바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약혼한 사람들을 무척 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다. 약혼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히 주님과 결혼할 자로 선택받은 자들을 주님은 더욱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부어주는 사랑만큼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다. 사랑은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사랑은 남녀가 동시에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접근했을 때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현제 우리의 모습을 보면 주님 쪽에서는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날마다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우리들은 전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주님 쪽에서 화가 나겠는가?


이제 반대로 똑같은 환경에서 젊은 처녀 총각이 사랑을 나누는데, 서로가 자기의 주장만을 앞세우며 사랑의 조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상대가 예뻐 보여도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설령, 남자 쪽에서 일방적으로 여자를 사랑한다할지라도 여자가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남자를 자신의 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결국 쪼개지고 말게 될 것이다. 주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고 싶어도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이상 그 사랑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 결혼을 못한다고 해서 절대 신랑이 아쉬운 게 아니다. 진짜로 아쉬운 것은 우리 인간들이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인간들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다 보니까 주님의 크나큰 사랑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화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교만이다.


또 다른 쪽에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관계를 조명해보자!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모든 영의 아버지이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가진 존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주님만을 선생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죽은 자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도 결코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예수 이름을 크게 불러도 그리스도가 그들의 선생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아무리 말씀을 전해줘도 절대 듣지 않는 것이다.


자기 뱃속으로 낳은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부모는 자기가 낳았기 때문에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한평생을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한다. 그런데 철모르는 자식들은 그런 부모 마음을 눈곱만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부모는 자식이 바르게 성장하기만을 바라고 나쁜 짓을 하거나 나쁜 행동을 할 때,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어 때린다. 그렇게 매를 들고 때리는 아이는 그런 부모가 순간적으로 밉기도 하고 또한 무섭기도 하다. 그리하여 아이는 아이스크림도 주고 과자도 잘 주는 옆집 구멍가게 주인을 좋아하게 된다. 구멍가게 주인은 그 아이가 말도 잘 듣고 겉보기에도 착하게 생겨서 더욱더 그 아이를 이뻐해 준다. 그리고 설사 그 아이가 잘못해도 남의 집 아이기 때문에 구멍가게 주인은 함부로 야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도 진정한 자기 아이라면 잘못했을 때 야단을 쳤을 것이다. 밖에서는 그런 아이가 집에만 들어오면 아빠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있기가 싫어서 자꾸만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는 방황하는 아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타일러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는 더욱더 삐딱하게 나가는 것이다. 급기야 아버지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더 큰 매질을 해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때리는 부모나 철없는 아이나 꼬인 실마리가 절대 풀리지 않는다. 아이 쪽에서는 부모가 자신을 맨 날 미워해서 그런다고 부모 탓으로 돌리고 있고, 부모 쪽에서는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세상 사람들이 주는 것이나 얻어먹고 다니는 것이 속상하여 야단을 치고 매질을 해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원만히 해결되려면 아이가 자라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부모도 더욱더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아이가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부모역시 아이의 모든 것을 받아줄만한 사랑을 갖추게 될 때,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철이든 아이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을 것이고, 부모 역시 그런 아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상황이다. 현제 이곳에 와 있는 6가정 중에서 3가정은 아버지의 겉만 보고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아버지 품속에 하루빨리 들어와서 아버지가 주는 것을 받아먹고 사는 것이 아버지가 바라시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자꾸만 아버지가 무섭다 하여 옆집에서 주는 과자 부스러기나 얻어먹고 있고, 또한 세상 사람들이 주는 달콤한 쥐엄열매를 보약처럼 받아먹고 다니는 자식들을 보면 어느 아버지가 화나지 않겠는가? 벌벌 떠는 3팀은 반드시 자신들의 처지를 하루 빨리 깨닫고 아버지 품속으로 들어와서 아버지가 주는 것으로 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무섭다고 자꾸만 밖으로 배회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무서운 분으로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온 세팀은 마음에도 없는 짓을 일삼으면서 거짓과 위장으로 부모 마음을 움직이려 하는데, 그런 수작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위장을 해도 진실 앞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실한 마음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절대로 너희들을 자녀들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한 자신의 영적인 부모로 느낀다면 이곳에 와서 어줍짢은 행동은 오히려 밉상만 더 받게 된다. 아버지를 진정한 자신의 부모로 생각한다면 본인들이 어떤 자세로 나와야 할 것인가는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첫째도 마음으로 둘째도 마음으로 셋째도 마음으로 진실 되게 행동해야 한다.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도 있다”고 했듯이, 마음이 없는 행동은 모두거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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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1 21:11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