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오늘날 여자들이 지녀야 할 신앙(2)

오늘날 여자들은 왜 교회 안에서 잠잠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처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사건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 여자 따로 따로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부터 만든 다음에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여자는 남자 신체중의 일부이라는 말이다. 남자 신체중의 일부로 만들어진 여자가 남자의 허락 없이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을 사실로 입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바로 에덴동산에서 뱀이 여자에게 접근하여 선악과를 따먹도록 종용하자 정말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머리가 아니기 때문에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간교한 뱀은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아담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에게 접근하여 선악과를 따먹도록 종용했던 것이다. 여자가 자신이 어디서 생겨난 몸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더라면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반드시 먼저 자신의 주인에게 물어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여자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않고 도리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아무런 의심 없이 선악과를 따먹게 된다. 그러자 정말로 자신이 당장에 죽지도 않고 또한 눈까지 밝아져서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이 창피하게 느껴지자 그것을 선악을 분별하는 밝은 눈으로 착각한 나머지 이번에는 당당하게 선악과를 따들고 자신의 머리되는 남편에게까지 주어서 먹도록 한 것이다. 뱀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없던 일을 여자를 통해서 남자까지 지배해 버린 것이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하는 말처럼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그때부터 사단이 인간들을 지배하는 하나님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여자를 직접 상대하신 적이 별루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남자들을 불러다 당신의 종으로 쓰셨다. 이런 이유는 바로 여자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 여자를 선지자로 쓰신다 하여도 잠시 그의 입을 빌려서 말만하게 할 뿐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는 반드시 남자들을 데려다 쓰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릴 때보면 거기에는 여자들은 숫자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는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고 설사,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하더라도 그는 성인으로서 당당히 자격을 갖추고 어른으로서 구실을 하게 된다. 이때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남으로서 비로소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여자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들에 나는 잡초처럼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여자도 남자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말한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여자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라며 감탄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여자들이 남자를 주관하고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며, 여자들이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했거늘 오늘날 이런 정확한 사실도 모른체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에 무조건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가르치다보니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교회에서 여자들을 잠잠하게 하려면 남자들이 그만큼 본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자신들은 머리라고 하면서 말씀대로 전혀 살지 못하면서 여자들에게만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서 말씀대로 살라고 하니 누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유대인 남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이제 이방인들에게는 여자들이 더 없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 이유는 이방인 남자들은 이미 사단에게 깊숙한 부분까지 허용당해 있기 때문에 좀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절대 쉽지 않다. 이것을 이방인 여자들이 자신들을 전적으로 희생해서 남자들을 사단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도록 해야 한다. 남자들 스스로는 절대 사단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의 희생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현재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적용시킬 수 없지만,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서 신앙생활 하는 여자들에게는 귀담아 듣고 이 말씀을 마음깊이 새겨야 한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 살던 사람들 앞에 빛 되신 주님이 오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쫓아서 나올 것 같지만 요한복음 3:19절 말씀처럼 사람들이 그 빛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 앞에서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하여 빛 앞으로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결국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방남자들이 훨씬 더 빛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사단이 이방 남자들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칠흑같이 어둠속에 살고 있는 남자들을 빛 되신 주님 앞으로 데려와서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해서 자신의 자아가 조금씩이라도 부서지게 해야 할 텐데, 남자들이 워낙 사단으로부터 강하게 지배를 받고 있다 보니까 주님 앞으로 와서 말씀을 듣는 순간 3일을 못 버티고 화를 벌컥 내면서 달아나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여자들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에덴동산에서는 여자가 먼저 사단이 주는 선악과를 멋모르고 따먹었지만, 그 빚진 것을 갚는다는 차원에서라도 이번에는 주님으로부터 여자가 먼저 선한 것을 받아서 남자들에게 먹여주라는 것이다. 절대 쉽지는 안겠지만 자신의 목숨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마음만 먹는다면 여자들이라고 못할 것도 없다. 사단이 주는 선악과도 따먹었는데 주님이 주시는 선한 열매를 못 받아먹을 리 없다.


여자들이 주님이 주시는 선한 열매를 받아먹고, 가정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남편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선한 열매가 얼마나 좋은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남편들을 주님 앞으로 불러 올 수 있다.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가 전적으로 희생을 감수할 때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 남편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그들은 주님 앞으로 달려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실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순간만을 모면해보려는 거짓으로는 설사, 남편이 부인의 위장전술에 속아서 주님 앞으로 왔다할지라도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은 주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이곳에 안 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한번 속은 자는 다시는 속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주님 앞에 진실해야 내 남편이 나의 희생을 통해서 이곳에 올 수 있는 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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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1 21:12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