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유대인의 삶과 기독교인의 삶!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과 오늘날 성령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모두 똑같은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다. "똑같다"는 말은 아직도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하여 그것으로 모두가 구원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당시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만 율법을 주셨다하여 스스로를 이스라엘 성민(거룩한 백성)으로 자처하던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듯이, 율법으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성령 아래 사는 기독교인들 역시 어느 누구도 성령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성령으로는 오직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만 깨달을 뿐이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율법 아래서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율법에 기록된 내용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날마다 그 법을 다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연약한 육신을 입은 인간이 어떻게 그 법을 다 지키며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으로 살고자 하는 자는 도리어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령 아래서 사는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려면 날마다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연약한 육신을 입은 인간이 날마다 세상 유혹을 물리치며 어떻게 온전히 성령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겠냐는 것이다. 

법이란 100가지 중에서 단 한가지만 어겨도 모든 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라고 야고보서 2장에서 말하고 있다.(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않았어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자가 되니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에게 각각 율법과 성령을 보내 주신것은, 장차 법 아래 살던 백성들이 법을 어긴 죄에서 구원하러 오실 하나님 아들을 기다리며 살라고 먼저 법을 주어서 그 아래서 살게 하신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 10:32절에서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한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에게 각각 율법과 성령의 법을 주었으나 그들이 그 법을 온전히 순종치 못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것이나,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불순종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놓아두었던 것은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그들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유대인들은, 율법을 온전히 따라살지 못한 자(육체가 병들거나 당시 가장천한 생활을 하던 창기나 세리같은 자)들이 예수님을 찾아나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예수님으로부터 긍휼(죄사함)함을 입고 먼저 영생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 그리고 제사장 같은 자들은 좀처럼 자신은 율법을 범한 적이 없다하여,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아니하였는데, 그들의 비참함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여기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이런 일은, 성령 아래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지게 되는데, 과연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그들의 죄(성령을 온전히 따라살지 못한 죄)를 지적할 때, 과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아들의 말을 어떻게 대항하고 나올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자신이 성령을 온전히 따라살지 못한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나오는 자는 영적으로 오신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겠지만,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자신은 성령의 뜻을 거역한적이 없다고 믿고 있는 자들은 십중팔구 하나님 아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으려 할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기독교인 대부분이 성령 받은 것을 구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살다보니, 죄를 범해도 전혀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뿐만아니라,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회개만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줄 알고 있다. 

물론 회개하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개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잘못에서 돌이켜 나오는 것을 진정한 회개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적질을 일삼던 자가 회개를 했다면 다시는 그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시 그런짓을 일삼는 것이 현제의 기독교인들의 모습 아니던가?

이런 어줍짢은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면서도,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주님께서 공중에 재림하면 자신만은 틀리없이 불려올라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떡줄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공중에 재림하시기전에, 먼저 도적같이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다. 도적같이 오시겠다는 말은, 이방인 가운데 한사람을 특별히 선택해서 그 사람속에 오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오신다는 뜻이다.

그렇게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자신이 성령의 법을 어긴 죄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오는 자들에게 성경의 약속대로 긍휼을 베풀어 주게 되시는데, 그것이 바로 계시록에서 말씀 하신 인(印)치는 작업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인을 맞은 자들이 바로 땅에서 첫구속함을 입은 하나님 아들들이 되는 자들이며, 바로 이런 자들을 주님께서 최후에 공중에 재림하실 때 대리려 오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있는 목사나, 장로, 권사, 신학자 같은 높은 감투를 쓰고 있는 자들은 자신은 아무 잘못도 범한 적이 없다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척할것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리스도의 긍휼함을 입지 못하여, 자신이 성령을 따라살지 못한 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마지날에는 하나님의 심판(하늘에서 내리는 불비)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유대인의 예에서 보듯이, 다시는 그들이 걸어갔던 길을 우리가 걷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장차 우리 앞에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란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내가 성령의 뜻대로 살았는가? 그러지 못했는가? 하는 것만 자신이 마음속으로 깨닫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도적같이 오시기 때문에 누가 하나님 아들로 오시는지 기독교인들은 전혀 알 수 없음)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거든 바로 그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주님 앞에서 고백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유대인들 앞에 오신 예수님도 바로 이렇게 오셨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눈으로보면서도 그가 하나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오실 하나님 아들도 바로 이렇게 오시는 것이다. 이제는 영적인 시대라 눈으로 보고 주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귀로 그 음성을 듣고 주님을 알아야 하는 시대에 와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있으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로지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나오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에 이르게 해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와는 반대로 나오는 자들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불심판만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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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1 21:16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