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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말씀

법 아래서의 삶과 은혜 아래서의 삶!(1)

오늘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왜 성경에 기록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자꾸만 성경말씀과 빗나간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성경말씀을 제대로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무식의 소치이다. 다시 말해서 어둠속에서는 빛의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자꾸만 유대인들의 신앙만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하는데, 실상은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과 비교해서 조금도 다를봐 없는 사람들이다.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몸밖에서 지키며 사는 것을 육적인 백성이라 말하는 것이며,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마음속에서 지키며 사는 것을 영적인 백성이라 부른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아 육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오늘날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의 피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받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체로 지키며 살라고 주신 법이고, 성령은 이방인들이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라고 주신 법이다. 그런데 육체에 주신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여 몸에 이상한 병이들곤 하였던 것이다. 그와 같은 이유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 땅에 유난히 병든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법 아래서 살아가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성령을 제대로 따라살지 못하게 되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저주(악귀)가 임하게 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이 자꾸만 황폐(악귀가 둥지를 틀고 자리잡음)하게 되어 나중에는 회개도 제대로 되지 않고, 양심이 화인(火印)맞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디어져 버린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타락의 양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도 다 이와같은 이유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개(자신이 토했던 것을 도로먹음), 돼지(자신이 배설한 똥위에 도로누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의 피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보내주어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아무튼 율법을 받아서 육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든지, 성령을 받아서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당장에 구원에 이른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법을 먼저 주신것은 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한계(법은 누구도 온전히 지킬 수도 없고 온전히 따라살 수도 없음)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지, 그법을 통해서 인간이 구원에 이르라고 주신 법이 아니다. 법을 지켜서 인간이 구원에 이를것 같으면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법은 누구도 온전히 지킬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대인들은 모두 율법으로 의로워져 있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받은 것으로 모두 의로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법으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바울은 성경에서 수십번도 더 강조했는데, 어떻게 법으로 구원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인가?

법으로 구원에 이르려면 인간이 법을 완벽하게 지켜야 가능한 일인데, 과연 육신을 입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율법과 성령의 법)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고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은 분명히 누구도 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전(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두고 법을 잘지킨 것으로 착각하여 스스로 의로워져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악귀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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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들이 아직도 법아래서 구원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객관적 삶을 통해서 증명해 보도록 하자!

법 아래서의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불안전한 신앙생활이다. 마음이 불안전하다보니,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는 남의 잘못을 보고 무차별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상대방이 자신에게 조금만 기분 나쁜 소리를 해도 참지를 못하고 화를 버럭 내는 것이다. 

그리고 법아래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매말라 있기 때문에 절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또는 마지 못해서 겉으로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성경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반죽게 생겼는데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은 그곳을 그냥스처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사마리아인은 그의 사비를 털어 그를 적극적으로 돌봐 주었다. 만약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이방인이었더라면 기꺼이 그를 도와 주었을 것이다.(율법에는 성전에서 수중드는 자는 절대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되어있음)

이럿듯 법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수 있는 여력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도 법을 제대로 잘지켰느냐? 못지켰느냐? 하는 판국에, 남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본인들이 이런 불안전한 산앙생활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해지면 좋겠는데, 문제는 이런 약점을 지니고도 곧 죽어도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는 조건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부족한면을 드러냈는데, 어떻게 그가 자신을 의롭다고 자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참으로 어둠속에 사는 그들로서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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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은혜 아래서 사는 자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은혜란?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주님의 은혜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받은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법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들은 타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법을 어겨 죽게생긴 인간들을 구원 하시러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타락한 인간을 다시는 타락으로 갈 수없게 하러 오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다시는 죄를 범치 못할 뿐 아니라, 오직 주님의 지시대로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사울로 있을 때는, 법 아래서 혈통을 내세우며, 학문을 내세우며,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며 종횡무진 설치고 다녔지만, 그가 예수를 만나 은혜 아래 살게 되니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요" 파렴치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간 법아래서 쌓았던 학문과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했던 것도 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의 피흘림을 통해서 성령을 받고 영적인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이를 다른말로 하면 성령을 통해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에 참여했던 사람들 또한 처음에는 모두 눈이라도 빼줄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성령을 거스리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라 할것도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과 짝하게 되어 성령의 은혜를 저버리고 타락으로 가게 되었는 것이다.

성령을 거스려 이제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길이 없게 되었다. 이 지구상에 누구 한사람이라도 온전히 성령을 따라 산자가 있다면 주님은 다시 오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령을 거스리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 또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주님이 오셔야 한다. 기독교인들 앞에 영적인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의 은혜로 다시 살 수 있게 된 자라면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또 다시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을 높이거나 자랑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하며 살수 있겠는가?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절대로 그런 삶을 살 수가 없다.
아니! 그러고 싶어도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자는 자신의 욕심을 부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요일3:9절에 하나님의 씨가 있는 자는 절대 범죄치 못한다고 했듯이. 주님과 함께 있는 자 또한 절대로 자기 욕망대로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첫째, 원수라도 그의 영혼만 구할 수 있다면 그를 위해 기꺼이 죽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둘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다.
셋째, 절대로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넷째, 한번 말한 것을 절대로 변덕부리지 않는다.
다섯째, 오래 참을줄 아는 사람이다.
이밖에도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에 대한 삶을 설명하자면 하루종일 기록해도 모자랄 것이다. 

반대로 법 아래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주님의 은혜 입은 자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오늘날 각 교회와 성도들을 가만히 살펴보라! 어느 누가 이런 삶을 살고 있는가? 몇 가지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중에서 단 한가지라도 옳바르게 실천하자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세상 사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제 법 아래서 사는 자의 삶과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삶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글을 읽는 분께서는 법아래서 사는 삶과 주님의 은혜 아래서 사는 삶을 분명히 분리할 수 있어야 할것이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자신또한 바람에 떠밀려가는 안개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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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1 21:18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