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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말씀

성령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은혜!

오늘날 누구나 말로는 “나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었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말을 먼저 앞세우지 않습니다. 그런 자는 은혜 입은 것을 자신의 삶으로 직접 보여주기 때문 것입니다.
 
그러나 말만 앞세우는 자들은 자신의 거짓을 숨기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곧잘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사람들을 그럴듯한 말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도적질해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본인역시 어둠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는 목사나 장로 같은 높은 감투를 쓰고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오직 인간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서 한번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단 한번밖에 없는 값진 선물인 것입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은,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겠지만, 기독교인들로서는 아직 어느 누구도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아직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진짜로 주님의 은혜를 입고 다시 태어나려면,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주님이 오셔서(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고 나오는 자들을),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실 때, 비로소 기독교인들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가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믿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모두가 그 은혜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 모두들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때 당시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라도 다 바칠 것처럼 호들갑을 떠입니다. 마치 자신의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칠 것처럼 처음에 성령을 받고나면 모두들 요란스럽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 기독교인들이 성령에 참여한바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스럽게 느껴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경쟁상대가 된다싶으니까 갑자기 싫어지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원수로까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처음 성령을 통해서 맛보았던 하나님의 은혜는 점차 사라지고, 세상에서 더 잘 되고 싶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마음에, 성령의 음성마저도 소멸시켜가며 세상 것에 도취 되어 살다보니, 그가 하는 신앙생활 역시 당연히 뒷전으로 밀려나 형식적으로 예배당 문턱만 밝고 왔다 갔다 할 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교회 지도자들이라도 성령에 붙들려 있어서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터인데, 본인들이 오히려 세상 유혹(돈, 명예, 이성)을 더 이겨내지 못하고 일반 성도들보다도 더 타락하여 성도들을 부추기고 있으니, 그 밑에 있는 성들이야 아무것도 모른체 타락한 목사가 가르치는 방법(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리고 성령의 법으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은 것을 구원받았다고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음)대로 따라 하다가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에 빠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성령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던 자들은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세상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하고 타락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타락으로 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9절에 “하나님의 씨가 있는 자는 절대 범죄치 못한다”고 했던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가 그 주인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신” 말씀 또한 어느 누구도 실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지도 모른 사람들이 “나도 주님의 은혜를 입었다”며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행동을 보여주겠다며, 청량리역, 서울역, 영등역등 전국 방방곳곳에서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을 데려다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여주면서,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영적인 백성들에게 그런 밥 먹여주는 일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 맡겼다면 주님은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실 필요가 없게 됩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것 또한 분명히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성경에서 말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네 이웃이란”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네 이웃이란” 개념은 누가복음 10:25-37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강도만난 자가 거반 죽게 생겼을 때,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리로 지나갈 때 강도만난 자를 당장에 도울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규례(성전에서 일하는 자는 절대로 부정한 것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규례가 있음)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율법의 저촉을 받지 않기 때문에 강도만난 자를 기꺼이 도와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예수께서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하고 묻는 율법사의 잘못된 “내 이웃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아주려고 그에게 그와 같은 비유를 써서 “네가 영생을 얻고 싶거든 너도 가서 그리하라”며 율법사가 율법의 규례 때문에 도저히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말씀을 일부러 해주셨던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이나,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법에 얽매여 사람들을 편파적(창녀, 세리 몸에 병든 자들을 그들은 인간으로 취급도 하지 않았다)으로 대했던가를 여러분들은 성경을 통해서 많이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는 교회 목사들은 무조건 설교 때마다 강도만난 자를 도와준 사마리아인을 선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고,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마치 나뿐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는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율법 아래 살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강도만난 자를 도와주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높은 감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일 수록, 또는 신앙생활을 대를 이어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일 수록, 문선명 같은 이단들을 상종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편파적 기세가 얼마나 등등한지 심지어는 통일교 재단에서 생산하는 맥콜 같은 음료도 사먹지 말자고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 기독교인들이 배척하는 집단들이 통일교뿐입니까? 자신들과 조금만 마음이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서슴없이 마귀 앞잡이로 매도해 버리지 않습니까?


만약 오늘날에도 영적으로 오신 주님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묻기를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똑같이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다면, 기독교인들이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님께서는 바로 너희가 이단이라고 배척하던 자들이라고 일러주며,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 하신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문선명 같은 자들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문선명 같은 자가 갑자기 강도를 만나 거반 죽어갈 때, 과연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은 몇 사람이나 문선명이를 도와 줄수 있을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시, 제사장이나 레위 인처럼 못본체 하고 지나갔거나, 아니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놈 마귀 앞잡이 노릇하드만 아주 잘되었다”며 박수를 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예자도 모르는 자가 그리로 지나가다가 다 죽어가는 문선명이를 보고 자기 부비를 다 털어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과연 누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였습니까? 아마 목사나 장로 같은 자들도 신앙생활만 하지 않았다면 문선명이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기꺼이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법 아래서의 삶은 때로는 자신을 족쇄에 채워 넣는 무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법아래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라도, 주님께서는 하루빨리 기독교인들 앞에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잘해주는 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럽습니다.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지역이 같은 사람끼리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그러나 나와 마음이 맞지 않거나, 종교가 같지 않거나, 지역이 같지 않거나, 신앙의 깊이가 같지 않으면 무조건 배척하고 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절간의 중들을 얼마나 마귀 앞잡이라고 매도합니까?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도 실상은 자신들 마음을 맞는 자들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도와주거나, 아니면 자신들보다 훨씬 못 한자들을 도와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자들을 이웃으로 설정하여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주님 뜻입니까?


오늘날 성령 아래 살고 있는 영적인 백성들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려면, 불쌍한 사람들 데려다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는 그런 육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백성들답게 마음속으로 그들을 사랑(품는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이웃 사랑이란? 네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네 목숨 또한 기꺼이 이웃들에게 내어 주어서라도 그들을 죄악 속에서 건져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성령의 법을 어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하여, 그로 하여금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을 수 있도록 하여, 그 사람도 주님으로부터 영생을 선물로 받아들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백성들이 진실로 이웃 사랑을 펼치는 사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가 이웃 사랑을 펼치는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이런 방법을 써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주님은 명령이기도 합니다. 가령, 문선명이는 이단 괴수니까 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고, 기독교인들은 아무렇게나 살았어도 무조건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나오는 자들에게는 차별이 없이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런 원리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또는 타 종교에 몸담았던 자나, 이단이나,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던지 주님께서는 지난 죄가를 따져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현제 자신이 진정으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오는 자만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두분이서 지금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갑론을박하며 열띤토론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분 중에서 한분은 분명히 자신을 지옥 갈 인생으로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한분은 자신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존재가 어떤 존재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그걸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울뿐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자신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해놓고도 정작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성령의 법으로 따져보면 두 분 모두 성령을 어긴 죄인입니다. 두 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 모두는 이미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입니다. 이런 분들 앞에 영적인 주님이 오셔서, 자신들의 잘잘못을 일일이 따져 묻는다면 과연 누가 더 자신을 낮추고 죄인라고 할까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어떤 분을 더 불쌍히 여겨 주실까요?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시고, 이 두 분의 문제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문제까지도 한번 진단을 내려 보시죠? 나는 과연 현제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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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1 21:17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