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한 알의 밀알이 되어라!



요한복음 12:24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위에 기록된 말씀을 귀가 따갑도록 설교 가들을 통해서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모두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씀대로 살아보라고 하면 아마 단한 사람도 이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하는데,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인간이 죽는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이 세상에서 이 말씀을 실천하고 살아갈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렇다”라고 밖에 답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기 좋은 말로 모두가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외처보지만, 입으로 부르짖는 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먼저 죽어봐야 만이 한 알의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데, 어느 누가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죽어봤다는 말인가? 이것을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상대방에게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나보고 상대방에게 가서 잘못을 빌라고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이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란 바로 의미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손수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우리들에게 그 실체를 보여 주신 분이시다.


따라서 성경말씀은 머리로 달달달 외우고 입으로 부르짖는다고 해서 실천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게 그 말씀대로 살라고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죄인으로 손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씀이다. 그렇게 손들 때 예수께서 대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그럼 성경은 이렇게 사람들이 실천하지도 못할 말을 무엇 하러 잔뜩 기록해 놓았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하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들에게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라고 기록된 말씀이지만, 인간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지 못한다는 것을 동시에 일깨워주고 있다. 그럼 어떻게 인간이 그 말씀들을 실천하며 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혹은 설교를 듣다 보면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모두가 한두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이라는 말씀을 익히지 않고 통째로 소화해내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의문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한 가지 목적 곧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기 위해서 기록되어졌고,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시고 난 뒤로는 모든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 역시 절대 인간 스스로는 그 말씀들을 실천하며 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기록된 말씀을 실천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중심 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중심에 그리스도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죄악의 품성을 지닌 인간은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결국은 그리스도를 마음중심에 모신 자만이 실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마음중심에 있는 자는 자신이 죽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한 알의 밀알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가 마음중심에 없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자신을 상대방에게 절대 희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같은 예로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온갖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을 십자가에 과감하게 내어줄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예수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과감하게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자라면(예수가 마음중심에 있는 자라면) 예수의 행적을 따라서 우리도 과감하게 남편(가족)을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을지라도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줄 수 없다면 그런 자는 살았다는 예수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에 불과하다.


이 세상은 서로가 자기 욕심(죄악)을 채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서 굶주린 하이에나(마귀)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내가 더 살기를 바란다면 나 역시 하이에나와 전혀 다를 봐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라면 이런 죽음이 가득찬 곳에서 남편(가족)들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나의 육신을 과감하게 하이에나에게 먹이로 제공해야 한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에게 그 입에 무엇인가 물려주지 않고서는 결코 가족들을 구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지, 전혀 나를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성경에 기록된 내용하고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마저 그럴 수는 없다.


오늘날 교회들은 건물만 웅장하게 짓고, 성도들 숫자만 많으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라고 모두들 착각에 빠져 있는데, 그것은 모두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유대인들이 당시 삶의 구심점으로 삼았던 예루살렘 성전이 그토록 하려하고 웅장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 손으로 지은 그런 성전을 과감하게 버리고 당신의 아들을 믿는 자만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셨다. 성전의 실체로 오신 하나님 아들을 믿는 자들은 외식에 물들지 않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입만 떠버리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진솔했고 삶 또한 세상 사람과 같지 아니했다. 그들은 언제나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자들이었다.


이런 이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예수 이름은 부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조금도 달라 보이는 구석이 없다면 이런 자는 이미 예수 이름을 팔아서 부를 축적하는 자로 봐도 틀림없다. 그리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가 땅에 지은 웅장한 건물에 매료되거나 세상 유행을 떨쳐내지 못하고 세상 기류에 휩쓸려 가는 자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희생정신을 본받아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것을 이행하지 못하는 자들 역시 겉만 그리스도인이지 속으로는 죽은 자들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언제나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자들이며, 이런 자들은 이 세상 어느 것으로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 않는 자들이다. 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은 주님의 언제 어디서 어떤 명령을 내리더라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이다. 이런 것들로서 우리는 알곡과 쭉정이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푸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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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1 21:15
조회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