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거리낌으로 하는 모든것이 죄니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어서 자신의 잘못을 비추어 보게 하였다면, 이방인들에게는 경우에 맞지않는 일을 했을 때 양심에 가책을 느끼도록 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해주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지만, 율법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없다면, 그들은 죄가 무엇인줄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율법에 "남에것을 탐하지 말라"고 하였다면, 이웃것을 훔치고도 그것이 죄인줄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남에것을 훔칠 때 그것이 죄라는 것을 무엇으로 느끼는가 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것으로 죄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이라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불신자로 살아가는 자들은 남의것을 훔치게 될 때, 양심에 가책을 느끼더라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그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이라는 잣대로 자신의 양심을 저울질 하기 때문에, 나쁜짓을 하다가도 양심에 가책을 받아 중간에라도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라도 자기의 이익이 달린 생존권 문제앞에서는 신앙양심도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만다. 분명히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존권 문제라는 것을 앞세워서 하지 말아야 할짓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신앙양심에 비추어 볼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계속할 때는 그것은 하나님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행위다.

불신자들이야 어차피 진리가 없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믿는 자들은 모두가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불신자들처럼 뻔뻔스럽게 나쁜짓을 하면서도 전혀 신앙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양심이 화인맞은 자이다.

가령, 어떤 목사가 성도들에게는 세상것을 다 버리라고 말해놓고, 자신은 뒷구멍으로 돈을 빼돌려서 땅을 사서 노후생활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목사도 분명히 자기 자신이 이러면 안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이 가책을 받아 계속 그 문제 때문에 성도들 앞에 설때마다 찝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자신의 노후생활을 누가 보장해 줄것이냐며,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신앙양심의 가책마저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무서운 자신의 적이다.

이런 일은 주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불안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 자로서 마지막 보루인 신앙양심마저 팔아버리고 육신의 영달을 위해서 땅에다 두고 불안한 앞날을 피해 보려는 짓이다.

이런 큼직한 일 말고도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하지 말아야 일들이 무수히 많이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짓을 했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신앙양심이 동반되게 되어있다. 가령, 아내들은 남편에게 소흘히 대하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한 구석이 찜찜해 옴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죄가 성립되었다는 증거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반드시 여기에 따른 죄악을 본인이 육신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찜찜한 것을 그대로 넘기게 되면 반드시 자신에게 어떤 손해가 나든가? 아니면 남편으로부터 욕짓거라도 얻어듣게 되어 육신의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가 절대로 마음에 거리낌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거리낌으로 하게 되면 그것은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고가 터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거리낌으로하게 되면 무슨 일을 해놓고나도 전혀 떳떳함이 없다. 마지못해서 혹은 얼칙으로 일을 해놨는데, 무슨 낮짝으로 상대방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거리낌으로 하지 않고 마음속에서부터 당당하게 일을 해놓고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마음에 거리낌으로 하지 않고 내일처럼 정성을 다해서 했기 때문에, 누가 뭐라해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또한 거림낌으로 하지않게 되면 자부심마저 느끼게 된다. 매사를 이런 식으로 살다보면, 첫째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하여 당당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거리끼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내가 내 자신에게 우선 떳떳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매사에 자신감을 잃게 되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겁부터 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감을 잃은 본인은 분명히 마음속에 찝찝함이 남아 있는데도, 자신이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들이 하는대로 끌려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믿음 생활 하기가 어렵다. 끊고, 맺는 것을 확실히 할줄 알아야 거리낌이 마음속에서 느껴질 때,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데, 자신이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하게 되니까 마음속에서 거리낌이 올라오는데도 그것을 그대로 방치한체 내버려 두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가 뒤늦게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후회해보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고 만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이란 것을 주셨고, 거기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양심이란 것을 덧붙여 주셔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셨다.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속에 거리낌이 남아 있다는 것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계속해서 옳지 못한 그일을 하게 되면 자신에게 화가 돌아온다는 경고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계속해서 신앙양심마저 짓밝으며 하지 말아야 할 짓을 계속한다는 것은 스스로 죽기를 각오한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이 화인맞은 인간임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양심이 가책을 받아 괴로워 죽겠는데 어떻게 그런짓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

이방인들은 거리낌으로 하는 모든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신앙양심을 거부했을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을 능멸하는 짓이기 때문에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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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26 21:21
조회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