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동하지 말라!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육체로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라 무엇을 하던간에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다. 가령, 율법에 구제하라고 말했다면,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실천한답시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지나가면서 두리마기처럼 생긴 바지 가랑이 사이로 반세겔짜리 동전한잎을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그때 그것을 제일 처음 목격한자가 그 동전을 주워들고 바리새인을 찾아가서 돌려주려고 할 때, 동전을 떨어뜨린 그는 선심을 쓰는 척하며 처음 동전을 주운 사람에게 그 동전을 가지라고 주면, 동전을 받아든 그 사람은 허리를 굽혀 바리새인에게 감사를 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이런식으로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이나, 큰 길거리 어귀같은 곳에 서서 큰 소리로 기도 하기를 좋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더욱더 공경하도록 하기 위한 제스추어다.

금식할 때도 마찬가지다.
금식은 본뜻은, 인간이 음식물을 입에 넣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낮아진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상달시키기 위해서 금식을 해야 한다. 그런데 금식을 한다면서 일부러 얼굴은 상한 모습을 해가지고 있고, 머리는 헝클어진채로 산발을 해가지고 자신이 지금 금식중이라는 것을 은근히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금식은 이미 자기상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령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사람들을 의식하기는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보다 한술 더떠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실천한답시고 가령,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앞에 상달되도록 하라!"했다하여, 마음속으로는 자랑하고 싶어 죽겠으면서도 겉으로 꾹꾹 눌러 참으면서 구제한다는 것이다.

기도역시 마찬가지로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지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 상달시켜야 하는 것 때문에 겉으로는 꾹꾹 눌러 참는다는 것이다.

금식기도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머리도 풀어 헤치고 싶고, 얼굴도 일부러 세수도 하지 않아서 자신이 현재 금식중이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싶지만, 성경에 기록하기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니, 일부러 머리도 감고, 세수도 깨끗하게 하여 금식하는 티를 안내고 싶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왜 인간들은 이런 행동들을 계속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자체가 하나님의 피조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을 때, 인간들이 그 말씀을 실천하다보면 본능적으로 주의 사람들을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세밀하게 설명하자면, 하나님은 눈이 보이지 않는 비물질로 된 영이시요 인간은 흙에서 나온 피조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라 얼마든지 피조물들을 의식하지 않고서도 일을 진행하실 수 있지만, 흙에서 나온 피조물들은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가지고 말을 하다보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 사실은 인간들로서 전혀 실천할 수 없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인간들에게 실천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가령, 남을 비판하려거든 자신의 눈에서 먼저 들보를 빼라는둥, 원수를 사랑하라는 둥 사실, 이런 말씀들은 인간들로서는 실천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에게 이런 말씀을 실천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크나큰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순진한 사람들은 그 말씀들을 실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을 희생시켜 가면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원수로 지내던 사람과 화해하고 지내는 것)으로 하나님 말씀을 실천했다고 우쭐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들이 반드시 그대로 실천해보고 나서 육신을 입은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없다는 깨달아야 한다. 그것들을 일부러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씀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자신이 먼저 기록된 말씀을 실천해 보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그는 결국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악이 얼마나 중한지를 알기 때문에 단번에 죄인으로 무릎꿇겠다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실천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주님 앞에 무릎꿇겠다고 하는 자는 100% 거짓이다.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자기 죄악을 깨달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나, 강단에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을 해보고 나서, 자신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손을 두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말씀대로 순종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죄인으로 두손들겠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자는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언제라도 수틀리면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대로 실천을 해보고 손을 든자는 주님 품밖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자는 주님품안을 벗어나면 사망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너무도 잘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든 싫든간에 반드시 말씀을 실천해 보고 나서, 자신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 두손을 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에 한 두번 손을 들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된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자신속에서 아모리 7족속들을 모두 몰아내야 하듯이, 인간속에 들어있는 7가지 자아를 무릎꿇릴 때까지는 쉬지말고, 때마다 시마다 말씀을 실천해 보고 두손을 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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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26 21:29
조회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