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씨뿌리는 자의 비유!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씨부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 천국을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비유로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즉시 빼앗아 가기 때문에 이는 곧 길가에 씨를 뿌리운 자와 같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인간들에게 아무리 비젼있는 말(천국)을 들려주어도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그 말을 곧이 듣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악한자(마귀)가 와서 그 마음 밭에 뿌리운 천국(비젼) 말씀을 즉시 빼앗아 버리는데, 이는 말씀이 마음속에서 자리도 잡기전에 마귀가 그말씀을 밀어내기 때문에, 꼭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을 새가 주어 먹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씨앗이 돌밭에 뿌리워졌다는 말인데, 이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잠시 견디는 것 같으나,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핍박을 받게 될 때에 그 때는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말씀도 자세히 설명하면, 씨앗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말은, 겉은 대체적으로 말랑말랑한 밭인것 같으나, 그속에는 단단한 돌이 박혀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천국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마음속이 돌밭이라 말씀이 뿌리를 못내리고 계속해서 주변만 맴돌다가, 급기야는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핍박을 받게 될 때, 견디지 못하고 결국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씨앗이 가시떨기에 뿌리워졌다는 말인데, 이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이 말씀 또한, 이제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천국 말씀이라, 그 말씀이 현실로 자신에게 이루어지면 좋겠다하여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기는 하였는데, 그 말씀을 이루어려다보니, 당장에 자신의 모든 것부터 다 내려 놓아야 한다고 하니 걱정과 근심이 앞서서 결실치 못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씨앗을 좋은 땅에 뿌리웠더니,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일 수록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는 말로서, 이는 주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악을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었다고 하는 말이다"

이 말씀도 자세히 설명하면, 인간은 어짜피 죄 아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좋은 밭이 될 수 없으나, 하나님 아들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악 된 자신의 마음 밭을 갈아 엎고 주님의 뜻에 따랐다는 것이다.

우리가 봄에 농사를 지으려면 겨우네 묵었던 땅을 갈아 엎고서 흙을 잘게 부순뒤 그 위에다가 씨앗을 뿌리듯이, 우리 마음에도 천국씨앗을 심으려면 지금까지 죄악으로 묵어있던 우리의 마음 밭을 갈아엎고, 그런 후에 흙을 잘게 부순뒤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 또한 작은 일에도 결코 소흘함이 없게 하여, 주님 말씀이 내 마음 밭에서 뿌리를 잘내려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은, 아들 말씀을 듣고 자신의 마음 밭을 누가 더 얼마나 깊이 갈아 엎느냐 하는 것이다. 농사짓는 것도 땅을 깊게 갈아 엎어야 뿌리가 튼튼히 내려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듯이, 인간의 죄악 된 마음 밭도 누가 더깊게 갈아 엎느냐에 따라서 말씀의 뿌리를 깊게 내릴 것이기 때문에, 뿌리 깊은 나무가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이 씨뿌리는 비유는, 모형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직접적인 말씀이 되지 않고 모형으로 주어진 말씀밖에 해당되지 않는다. 가령, 그들에게 첫 번째 비유처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말은, 불신자로 살던 자가 부자로 살게 해주겠다고 하는 기독교인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뒤돌아서 세상으로 갔다는 말이다.

두 번째 비유도, 불신자로 살던 자가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말(부자되게 해주겠다는) 말을 곧이 듣고, 즉시 기쁨으로 달려오기는 했는데, 가족들이 언제 부자되느냐고 달달 볶고 귀찮게 하는 바람에 끝까지 인내하지 못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도 세상으로 나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비유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살던 목사가 자신의 병든 몸을 고쳐 주니까 확실히 하나님이 살아 계신것도 알게 되었고, 또한 잘만 하면 부자가 되겠다는 확신도 섰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것을 받치라고 하니까 그만 지레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치고 말더라는 것이다.

네 번째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살던 목사가 들려주는 말씀을 따라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 살았더니, 병든 몸도 낫게 되었고, 또한 물질의 축복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모형으로 주어졌던 목사의 말이라도 그가 전하는 말씀을 믿었던 만큼 자신에게서 질병이면 질병, 물질이면 물질의 축복이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나타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모형으로 주어진 것들은, 온전한 아들이 오시기 전에는 항상 불완전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형을 주셨던 것은 장차 오실 아들을 대신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그것을 연습해 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충분히 연습되어 졌다고 여겨질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가운데 보내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오묘한 섭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깊고도 높고도 넓은 생각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내일일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현재 60억의 인구가 이 지구상에 치열한 생존경쟁에 뛰어들어 서로가 몸을 부디끼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알고 있는 자들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가 저들 보다 잘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한 행운을 잡은 사람들이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는 나에게 찾아온 이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주님의 은혜로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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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0:26
조회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