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여호수아는 우리가 알다시피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장본인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장본인은 모세다. 그런 모세 밑에서 40년 동안을 변함없이 모세의 시종으로 수중들던 여호수아가 모세가 죽자, 그 바톤을 이어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강인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보다는 여호수아를 먼저 선택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모든 일에 능통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는 일에는 쓰임받지 못하고 나중에 모세의 뒤를 이어서 요단강을 건너면서부터 쓰임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에 여호수아가 처음부터 쓰임받게 되었더라면, 애굽에서 태어나서 바로 밑에서 온갖 여러가지 고역을 겪어가며 거칠고 험하게 자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바다를 건너서 바란광야를 지나가야 할 여호수아로서는 힘든 여정길이란 사실을 미리 알고,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여호수아를 불러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바로궁에서 자라면서 천체와 지리, 그리고 물리학을 공부한 모세를 먼저 사용하신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동안 모세 밑에만 있었기 때문에 아직 한번도 사람들을 직접 리더해 본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로서는 막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성을 함락시키려고 보니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호와 명령에 의하여 리더 자리를 맡긴 맡았지만,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만한 자신도 없고 또한 적들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에 여호수아는 그저 앞이 막막할 뿐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계속해서 담대함과 믿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여호수아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여호수아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권면으로서 여호수아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도음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권면이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이 부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으로 여호수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이런 사실이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었던 것은, 비단 그 당시만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도 그대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다. 만약에 이런 일들이 그 당시만 이루어지고 오늘날에는 그런일이 재현되지 않는다면, 여호수아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저 전설 같은 이야기쯤으로 읽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적인 백성인 현기독교인들에게 당시 그대로 재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 아래 살고 있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당시 이야기를 오늘날 현실에 맞게 영적으로 적용시켜서 재현해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죄아래 살고 있는 영적인 백성들로서는 아무리 당시 이야기를 영적으로 재현시켜 보려해도, 그것이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 종들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육적인 것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했다 하면, 오늘날 이 말씀을 실천한답시고, 법을 잘지키기 위해서는 주일 성수를 잘하고, 십일조 생활을 잘하고,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었더니, 하나님께서도 그에 상응하는 댓가로 물질의 축복을 주시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야 한다. 만약에 하나님 아들이 개입하지 않으면 성경에 기록된 똑같은 하나님 말씀이라도 육신의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하나님 아들은 영생을 얻는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열심을 내고 또 다시 열심을 내더라도 거기서 얻는 것은 영생이 아니라, 육신의 축복밖에 더 이상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120년이나 되었지만,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참 아들로 들어나는 자는 아직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편법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다 보니까 그나마 한국 땅이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서 전쟁의 폐허더미속에서도 짧은 기간에 이만큼이라도 한국땅이 잘살게 되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을 얻은 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이 오시게 되면,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법이 필요없게 되고, 아들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곧 법이요 새 계명이 된다. 가령, 법으로는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하는 것을 잊지말기 위해서 그 법을 주야로 묵상를 하라고 되어 있다면, 아들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아들이 들려주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 말씀을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네 길이 평탄하게 되며 형통하게 될 것이이란 말이다. 이 말씀 또한 현실적으로 바꾸게 되면, "아들의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것을 네가 몸으로 실천하게 될 때 네 마음이 먼저 평강을 찾게 될 것이며, 그런 후에 네 육신의 모든 일도 형통케 될 것이란" 말씀이다.

실지로 이 강단에서 아들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몸으로 직접 아들이 하셨던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영생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되니까 물질마저도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아들이 말씀을 들려주어도 말씀을 들을 때 뿐, 뒤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려서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자들은 영생의 축복은 고사하고 육신의 축복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는 오직 처절한 육신의 고통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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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0:29
조회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