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꿈은 이루어진다!

세상 사람들이 대박을 노리고 로또복권을 산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지다보니 더더욱 그런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로또복권 당첨확률이 수백만분의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매주마다 복권을 사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꿈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그나마 살 맛을 잃고 말 것이다.

육신으로 사는 세상이 불과 100년 미만인데도, 그것을 큰 소리치며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그들이 죽고난 후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육신으로 이 세상을 아둥바둥 살려고 하지 않을텐데, 그런 사실을 모르다보니까 모두들 눈에 쌍심지를 키고 생존경쟁에 매달리는 것이다.

허기사,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큰 소리치고 싶어하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야 얼마나 이 세상을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 하겠는가? 그래서 저마다 그런 꿈들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믿는 자들이라면 영원히 살아야 할 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몇 십년을 살기 위해서 아둥바둥 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적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을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인내하는 행동이 절대 필요하다. 꿈을 가져놓고 그것을 인내하지 못해서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불평하게 된다면 그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엄청난 시련과 아픔이 따르게 될 것이다.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하여 꿈으로 계시를 받고, 그꿈이 이루어 지기까지 그는 온갖 어려움과 갖은 수모를 겪지만, 그는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 질것을 믿고 끝까지 참고 인내함으로서, 그 꿈이 그대로 이루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꿈으로 계시를 받았던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으로 받았던지 그것을 끝까지 믿음으로 참고 인내했을 때,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꿈을 이루려는 자가 말씀으로 주신 것을 믿지 못하여, 중간에 힘들다고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게 되면, 그 꿈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넣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광야를 지나는 길에 마실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고기를 못먹어서 불평하고, 편안한 보금자리가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다가 모두 1세대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꿈이나, 말씀으로 받은 계시도 이렇게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모두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은 그것이 얼마나 더 정확하게 이루어지겠는가?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이나 환상은 믿으려 하면서도, 아들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은 사람 말로 알아듣고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요셉, 모세, 엘리야, 다니엘등등은 하나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 집에서 일하는 사환들이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꿈이나 혹은 말씀으로 그들을 불러서 사용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는 아버지께서 직접 예수의 영속에 들어가셔서 말씀 하시게 되니 당연히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마찬 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께서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서 사용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 집에서 일하는 사환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셔서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그가 하신 말씀은 성령으로 쓰임받는 종들이 하는 말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이루어 진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 아들도 종들과 똑같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그들보다도 더 못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하여 아들이 하는 말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아들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하다 보니까 아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하면 너희가 분명히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지만, 그들은 그 말을 사람의 말로 알아듣고 곧 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요셉의 일생을 통해서 보듯이, 열한 짚단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나서 요셉의 삶이 그동안 얼마나 우여곡절을 많이 겪게 되는 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요셉이 하나님께로 받은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평지풍파를 겪어야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아들의 입을 통해서 그 많은 희망과 앞으로의 비젼있는 말씀을 듣고도 도무지 아들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조금만 나에게 불이익이 찾아와도 불평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야단을 맞는 것인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속으로 궁시렁거리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아들은 호통을 치는 것인데 조금만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그것이 듣기 싫어서 눈을 아래로 깔고 처다보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마지막 손질을 하고 계신다. 자신이 끊임없이 높아지려고 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되 그가 높아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채찍을 가하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녀가 볼 때는 이것이 무슨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냐? 사랑이냐?하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녀에게 채찍을 가하지 않고 부드럽게 은혜를 베풀어 준다면 그는 금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 만장을 하게 될 것이 너무도 뻔하다. 따라서 그녀는 이렇게 채찍을 맞아가면서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죄인이라고 혹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퍅 낮추어 버리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높여주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은혜 베푸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낮추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들을 높여주는 작업이 은혜로 배정되고, 자신이 자꾸만 높아 지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을 낮추는 작업이 은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더 부연설명하자면, 만약에 똑같은 두사람에게 신발을 사주었다고 했을 때, 자신을 죄인이라고 낮추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발을 사주고 덤으로 칭찬도 아끼지 않는데 비해서, 자신이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신발을 사주고 높아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호통을 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은혜가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높아지려는 그것 때문에 고통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본인이 깨닫고 있으면 그마나 다행이지만, 만약에 못깨닫고 있다면 그는 주님의 은혜를 받고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평을 하게 되어 도리어 화를 자초하게 되고 말게 된다.

아무튼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고 있는 사람과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지 못하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같은 은혜를 받더라도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같은 값이면 자신을 죄인으로 철저하게 낮추어서 주님으로부터 기분 좋은 은혜를 받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0:28
조회
43